처음 이곳을 찾았던 건 이른 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일부러 찾아간 건 아니었다. 괜챦은 식당이 있다길래 나섰던 길이었고, 식당 주변에 마땅한 주차 공간이 없어 이리저리 돌다가,
새크라멘토 시립 역사 묘지(Sacramento Historic City Cemetery), 이곳까지 가게 됐다.
3월 그날은, 햇살은 좋았지만, 아직 찬기가 꽤 남아 있을 때라 산책하기에 딱히 어울리는 날씨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주차만 하고 나오려던 그곳을 꽤 오래 걸었다. 빅토리아 양식의 곡선형 산책로와 분수대, 대칭으로 잘 정리된 화단은 오래된 공동묘지의 음침함 대신, 마치 과거 유럽 귀족의 정원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이끼 낀 묘비들 사이로 막 피어오르던 연한 잎들, 어디선가 청명하게 울던 새소리.
그날의 산책은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그리고 다시 찾은 5월, 흐드러지게 핀 장미 때문에 그 선물은 두고두고 기억될 선물이 되었다.
Sacramento Historic City Cemetery, 이곳은 1849년에 세워진,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묘지 중 하나다. 새크라멘토시의 설립자인 존 어거스터스 서터 주니어, 크로커 미술관의 창립자인 에드윈 B. 크로커, 미국 대륙 횡단 철도 건설의 '빅 포' 중 한 명인 마크 홉킨스 같은 유명인들부터 1850년 새크라멘토에 발생했던 콜레라로 사망한 600여명의 초기 개척자들, 시민 영웅들, 철도 건설에 기여한 사람등, 새크라멘토의 역사를 살아낸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난 이곳을 단지 죽음을 묻는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기억하게 하는 공간이라 부르고 싶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장미”다. 이곳은 “장미 정원”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대부분 19세기 후반부터 전해 내려오는 희귀 품종들인, "헤리티지 로즈(heritage roses)"들로, 500여 종류의 장미가 해마다 피고 진다. 때문에 장미 애호가들과 정원사들 사이에선 “성지”처럼 여겨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여러 노력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정원을 돌보는 자원봉사자들의 존재다. 그들은 단지 잡초를 뽑고 물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묘비 곁 장미의 뿌리를 살려내고, 잊힌 품종을 복원하는 데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이런 노력들이 이곳의 장미를 오랜 세월, 죽은 자들의 곁에서 피고 지게 했고, 오히려 이곳을 죽음 너머의 생, 이별 너머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장미는 이름만으로도 시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장미’라는 말만 입에 올려도 어딘가 향기롭고, 마음이 한 박자 느려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장미는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중국 등지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또 장미는 유독 왕실과 귀족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삶의 구석구석을 장미 향기로 채웠고, 네로 황제는 병적으로 장미에 집착해 욕조, 베개, 분수대까지 장미로 꾸몄다고 한다. 또 로마 귀족들은 장미를 부의 척도로 삼아 경쟁적으로 장미정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장미는 때로 전쟁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15세기, 붉은 장미의 랭커스터와 흰 장미의 요크가 벌인 ‘장미 전쟁’은 30년 동안 영국을 흔들며, 권력과 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에게 장미는 순수한 열정의 대상이었다. 말메종의 정원에서 그녀는 250여 종의 장미를 수집했고, 100여 종의 새로운 품종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으니 말이다.
미국 장미의 역사는 17세기 말, 이민자들이 유럽에서 가져온 장미들과 자생하던 야생 장미들이 결합하며 발전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장미는 단순한 식물이 아닌 미국 정원의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특히 ‘해리슨 옐로우 장미(Harrison Yellow Rose)'는 1830년대 뉴욕에서 태어나, 서부 개척 시대를 따라 대륙을 횡단하며, 개척자들이 세운 새로운 정착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세기 미국은 원예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Jackson & Perkins 같은 원예 전문기업이 하이브리드 티 장미( Hybrid Tea Roses)를 개발하며 품종의 다양성과 품질을 혁신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장미를 미국의 국화로 지정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미는 독일 힐데스하임의 마리엔 대성당에 있다. ‘천년 장미’라 불리는 이 장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대성당은 폭격으로 무너졌지만, 장미의 뿌리는 살아남아 지금까지 꽃을 피우며 1200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제나 시대와 사람들 곁에 머물러 온 장미.
누군가의 정원에서 조용히 피고 졌고, 때론 전쟁의 상처를 품기도 했고, 세상의 모든 사랑과 기다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과 권력, 기억과 망각을 함께 껴안고 피고 진 고요한 역사의 증인.
새크라멘토의 오래된 묘지 정원, 그곳의 장미 역시 수천 년의 시간과 이야기를 담은 하나의 기억이고, 이 땅을 거쳐 간 누군가의 인사이자 고백일 터이다.
당신의 장미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까?
누구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송이마다, 꽃잎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담으시겠습니까?
( 2025년 5월 미주 현대신문에 게재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