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젖습니다. 다다 젖습니다.
겨울에 스냅 작가를 시작하게 되면서, 야외에서 촬영하다 보니 날씨가 제일 변수일 때가 많았다. 겨울엔 추위가 문제고, 여름엔 당연히 더위가 문제겠지..라는 단순한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여름이 되어보니 가장 문제인 건 장마였다.
고객님들은 비가 온다 하면 대부분 야외 촬영을 꺼려한다. 어쩌다 한번 각 잡고 촬영하는 건데 당연히 맑고 화창한 날씨에 하고 싶을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날씨는 내가 어떻게 타협해 볼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을 한 두 번 변경해 보다 계속 비가 내린다 하면 어쩔 수 없이 우중 촬영을 진행하게 된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남자친구 연락처럼 예보를 애틋하게 자주 확인해도, 촬영 시작하면 안 온다던 비가 오기도 한다. (진짜 요즘 날씨는 비위를 맞출 수가 없다 이 말이야..)
작가의 입장으로 우중촬영이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명확한데, 좋은 점부터 말해보자면 사진에 우중 특유의 분위기가 독보적으로 담긴다. 비 오는 날 투명우산을 들고 있기만 해도 일단 60점은 확보한다. 우산을 내던지고 뛰어논다면 아주 쉽게 100점짜리 사진에 도달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좋은 점이라면, 우중 촬영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 깊숙이 남을 추억이 된다. 비를 가려주는 그 무엇도 없이 빗 속을 뛰어다니다 보면 잠시 현생을 내려놓을 수 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안 좋은 점이라면 카메라가 잠시 이성을 잃을 수 있다는 점..? 최근에 여러 번 우중 촬영을 진행했는데, 역대급으로 비가 많이 오던 날 카메라가 전원이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우중 촬영이 무서운 적은 없었는데 한번 카메라가 그렇게 되고 나니, '아 이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면 촬영을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카메라가 고장 날 위험만 아니라면 나는 개인적으로 우중 촬영이 좋은 편이다. 어느새 자라 비 한 방울 맞기 싫어하는 어른의 모습을 잠시 감춰볼 수 있는 시간이니까.
어쩌다 보니 7,8월은 예상치 못한 장마철 때문에 일정이 뒤죽박죽 엉키게 되었다. 이런 경험 또한 내년을 준비할 때 엄청난 에피소드와 데이터가 될 테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덧 1년을 채워가는 스냅작가는 분주히 차곡차곡 여러 이야기들과 경험을 쌓는 중이다. 예상치 못했던 위기들은 다음에 그 반대의 방향으로 가면 되니, 어떻게 보면 성공의 한 면을 알게 된 것이기도 하다.
이것 참 럭키비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