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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Sep 28. 2024

같은 장소에서, 같은 포즈를 시켰는데, 왜...

촬영 현장은 늘 기출 변형으로 가득해요.

 뜬금없는 소리로 글을 시작해 보자면, 나는 재수를 했었다.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만 기깔나게 깨우치던  나란 사람은, 매해 기출문제들을 열심히 풀어도 기출 변형에서 무너지고 말았던 것인데... 유난히 불수능이었던 현역 때에는 기출 변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오답들을 야무지게 찍었다.


 스냅 작가가 되어서 100팀이 넘는 촬영을 하는 동안, 똑같은 문제 유형은 없었다. 기출 변형을 만들어내는 요소는 꽤나 다양했다. 같은 장소에서 촬영해도 그날의 햇빛, 구름의 양, 풀의 높이, 스팟을 막아버린 차, 물론 그중에서 가장 큰 요소는 찍히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마주 보고 꽉 안아볼게요!"라는 같은 디렉팅을 했을 때, 키차이, 표정, 체형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포즈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촬영 현장은 늘 '어라..?' 했던 순간들이었던, 기출 변형으로 가득했다.

 수능에서는 오답으로 가득한 정답지를 제출하며 와르르 무너졌던 내가, 스냅 작가로서는 제법 그럴싸한 결과물을 내고 있는 건, 이 시험에는 정확한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커플 촬영을 할 때 "여자친구는 카메라를 보고, 남자친구는 그런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거예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요!"라는 디렉팅을 자주 하는데, 남자친구들의 눈빛은 모두 제각각이다. 따뜻하고 애틋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개구쟁이처럼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귀엽다는 듯 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리기도 한다. 다 다르지만 모두가 사랑을 담은 표현이기에 그 사진들은 틀린 것은 없고 다르게 담길 뿐이다.


 아, 그리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출 변형도 있었다. 올해 촬영 때문에 올림픽 공원을 자주 갔었다. 올림픽 공원의 잔디는 3월 말~4월 초부터 자라기 시작하고, 4월 말부터는 온전히 푸르른 들판이 된다. 5월이면 옅은 초록에서 진한 초록색이 된다. 아무래도 야외 스냅이라면 푸릇푸릇한 배경이 예쁘니까, 촬영 희망 장소로 올림픽 공원이 많았던 것 같다. 한동안 너무 자주 가서 촬영 스팟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는데, 8월의 어느 날 가보니 풀이 아마존처럼 자라 있었다. 들판에 눕는 포즈를 시켰는데, 사람이 반 정도 묻혀서 예쁘게 나오지가 않았다. 이젠 하다 하다 풀의 높이마저 변형되어 출제된 것이었다. 이젠 이런 상황들에는 당황스럽지도 않고 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여기서 포인트는 당황하지 않는 것.


"저희 다른 쪽으로 이동해서 촬영할게요ㅎㅎ"


 맞다, 내일도 올림픽 공원 촬영하러 가는데 이번엔 또 어떤 기출 변형이 나를 맞이할지...?

 나 홀로 나무가 뽑혀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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