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딸아이가 화장실에 들어온다
머리는 산발이고 얼굴은 부스스 그 자체인데도 눈이 부시게 예쁘다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하다 "너무 예쁘다 내 새끼~~~ 어쩜 이렇게 이쁠까"
그런데 딸아이 반응이 역시 예상을 크게 빗나간다
"나는 그런 말 싫어해. 그렇게 외모에 대해서 평가하는 말 별로야."
와!!!
잠도 덜 깬 12살 딸래미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지금 생각하면 자기 생각을 언제든 또렷이 말할 수 있는 게 멋지기도 한데 그 순간엔
민망한 마음에 입이 꾹 다물어져서 아무 말 못 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주방으로 걸어가면서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대학1학년 때 남자 선배가 위아래로 훑어보며 하는 말에 발끈했었다.
"오늘 소개팅 나가나 보지? 좀 차려입었는데?!"
"왜 위아래로 훑어보세요? 사람 외모로 평가하는 그런 말 너무 후져요."
뭐가 그렇게 꼬여있었던 건지.. 그냥 기분 좋게 고마워요 하고 넘겼어도 될 일이 그때는 그렇게 화가 나고 맘에 안 들었었다. 아마도 스스로 마음에 안 드는 자기 모습에 화가 나서 그 선배에게 화풀이를 한 게 아니었다 싶다. 한참이 지나 그 선배는 자신이 칭찬이랍시고 무심코 내뱉은 외모에 관련된 말이 어린 여자 후배에게 어떻게 들릴지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역시 훌륭한 사람들은 무엇이든 자신을 위한 발전의 기회로 가져가는구나 싶어 그 선배에 대해 새삼 존경심을 갖게 되었었다.
암튼 그 엄마에 그 딸이구만!
그래도 이쁜 건 이쁜 거지
내 새끼가 이쁜데 이쁘다고 말도 못 하다니 좀 괘씸한 생각도 든다
그러게... '예쁘다'는 게 뭘까
꽃은 태어나보니 그냥 꽃으로 불리고 '예쁘다' 소리를 듣는 거지 사람들에게 '예쁘다' 소리를 듣기 위해 피는 것은 아닐 텐데... '예쁘다'의 기준도 사실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 다른 건데... 어쩌면 '예쁘다'는 건 그냥 하나의 주관적인 관점일 뿐인데 예뻐지기 위해 예뻐 보이기 위해 애를 쓰면서 사는구나 싶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나도 모르게 예쁜가 안 예쁜가로 모든 걸 바라보고 있구나 싶어 지면서 잠시 숙연해진다. 모든 꽃이 다 그 나름대로 소중하고 충분히 아름답듯이 사람들도 모두 저마다 충분히 소중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그렇게 가르치고 싶었는데 정작 나조차도 예쁘다 안 예쁘다 그렇게 툭툭 내뱉고 살고 있구나. 정작 거울 속에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안 예뻐 보여서 화들짝 놀란다. 어쩌면 예쁘다고 볼 수 있는 건 그 안에 사랑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내가 요즘 마음에 안 들고 스스로 만족감이 없으니 예쁘지 않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딸이 자다 일어나 눈꼽에 베개자국에 부스스한 머리로 있어도 예쁘기만 한 건 객관적으로 예뻐서가 아니라 내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 건데...
내일부턴 예쁘다 안 예쁘다 그런 말 말고 진짜 진실을 말해줘야지..
"사랑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