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09
⠀삐뚤어진 입맛을 가졌다. 결코 편식은 아닌. 딱히 음식을 가리지는 않다만, 사실 인간들을 가려버린다. 그것도 무척 심하고도 가차 없이. 몇몇 사람들이 버섯을 싫어하고, 오이를 꺼려 하듯 나는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인간들을 가까이 두지 않는다. 그래야 내 입안이 거슬릴 것 없이 한결 말끔해지니까. 워낙에 평소에도 신경 쓸 것들이 쓸데없이 투성인 인간이라, 사소한 걸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싶지 않은 기질 탓에 그렇게 한다. 누구보다 잘한다고 쓸데없이 자부할 수 있을 정도다. 따라서 내 입맛에 맞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편식하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듯, 그런 인간과 함께 밥 먹으러 가는 것을 피곤해하듯 사람들은 나를 어려워하는 듯 보인다. 난 편인을 하니까. 티를 꽤나 내는 듯하니까. 어쩜 인간이 이리도 어리석은지. 싫어하는 게 너무도 많은, 맹목적인 적개심에 빠져 있는 인간. 무례함, 옹졸함, 이기적임, 교만함, 교활함, 불량스러움, 온갖 부정적인 감정 등등. 이러한 것들이 묻어나는 모든 것들을 경멸하기에.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사소한 모든 것들. 하물며 인간의 졸렬함이 자아내는 꽤나 불쾌한 것들에 웃도는 어설픈 악행들마저.
⠀이외에도 꺼려 하는 것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저런 것들은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당연하게도 싫어하는 것들이겠지. 헌데 난 병적으로 집착을 하는 듯싶다. 사소하더라도, 조금만 아닌 것 같다 싶으면 단번에 선을 그어버리니까. 싫다. 저런 것들이 스며들어 있는 육체 곁에 있기조차 싫으며 마주하고 싶지 않다. 나도 내 마음을 차근히 들여다보지 못하겠다. 너무도 복잡다단하고 어려워 잘 알 수 없기에. 나도 나를 모른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 자체는 나를 무척 피곤하게 만들기에, 단지 그 감정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한다. 눈에 띄지 않게끔.
그냥 어리석은 것이 맞다. 사람들은 모두가 저마다 다르기 마련인데, 그걸 어느 정도 인정하고 적당한 관계를 꾸려야 하는데, 내가 힘든 관계는 두고 싶지 않아 한다. 인정하기가 싫은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기준이 쓸데없이 높은 얼척없는 인간.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내가 뭐라고. 나도 알지만 그냥 어쩔 수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 외려 누군가에게는 내가 경멸하는 저런 면들이 내게도 어떻게든 보이기 망정일 텐데. 누군가는 내 사소한 결례에 집착하기 망정일 텐데.
⠀나는 조금만 내게 눈엣가시가 되어버리면 무심히 그 곁을 떠나버리곤 한다. 나도 이런 내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신통치 않다. 오히려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니까. 너무도 입맛이 까다로운 탓에 입 안이 즐거울 때가 한정적이라서. 그 대신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 평소 좋아하는 음식만 주구장창 찾아다니게 되는 것처럼.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아낌없는 마음을 주어버린다. 그것이 나의 관계 유지 방식. 그런 만큼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니 어쩌면 짧을 수도. 나와는 맞지 않는 면이 보인다면 금방 저버리니까. 어쨌든 되게 신중한 편이다. 사람을 그리 쉽게 사귀지 못한다. 그저 답답할 뿐인 내 성격의 야박한 측면들. 그래도 내 사람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진심인, 어쩌면 미숙함을 머금은 인간. 너무 진심인 나머지 나 홀로 지쳐버리는 순간들이 허다하니까. 허나 그것은 온전히 내 탓이다. 아무 잘못이 없는 내 사람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들.
⠀나는 주구장창 내 사람들만 찾게 되고 신경 쓰게 된다. 인간관계의 발전이 무척 더딜뿐더러 관계의 폭이 너무도 좁다. 내가 한없이 편안해질 수 있는 사람의 곁에만 머물고 싶어 하기에. 진정 이것이 맞을까 싶다가도, 바뀔 가능성이 없어 보여 심히 괴롭다.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만 머물고 싶다. 이건 모두가 공통이지 않을까. 솔직히 나 혼자 단방향으로 꺼려 하는 사람으로부터 남몰래 서서히 멀어지기란 쉽지 않다. 쓸데없이 미안한 감정이 들기 마련이라서. 하지만 머릿속으로만 도모하다가는 내 감정만이 가련해지고 비루해질 뿐이었다. 따라서 난 슬금슬금 그들과 멀어지려 애를 쓴다. 내게 가시가 되는 것들의 뿌리 자체를 무너뜨리고 꺾어버리면서, 완전히 등한시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 주변은 내가 좋아하는 맛집들만 남아있게 된다. 물론 어떤 곳은 가끔씩 맛이 평소와 조금 다를 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원히 내겐 맛집이라는 것. 어떻게든 결국엔 그곳만 찾게 되어버리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맛이라서. 그렇다 보니 새로운 맛집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 조금은 두려웠던 모양이다. 괜히 낭패를 볼 것 같아서, 괜히 기분만 상한 채 그곳을 나올까 봐. 허나 맛집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괜찮은 집은 계속해서 찾다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이라는 것. 이를 자각한 후로부터 그런 정을 여러 곳에서 이어나가 보려 부단히 노력 중인 요즈음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서비스가 좋지 못한, 손님에 대한 태도가 불량한 곳은 두 번 다신 찾지 않는 나. 나에 대한 존중이 없고 배려가 없는, 위생부터 더러운 곳은 경멸할 수밖에. 손님에게 한사코 무례함과 불쾌함을 늘어놓는 주인을 다시 마주하고 싶진 않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맞는 처사인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적대적이다. 나를 나 그 자체로 대해주는, 친절하게 맞이하는 곳들만 찾게 되어버리기에. 정이 넘치고 서로 따뜻하고 좋은 말만 오가는 곳, 그런 곳에 걸맞는 정겨운 인간들만을 나는 무척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그런 따뜻한 곳들이 무수히 많을 테니,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노력해야겠지. 적대심을 조금은 내려놓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겠지. 다양한 맛을 많이 느껴봐야 더 좋은 곳을 잘 찾아갈 테니까. 찾으려는 시도조차 안 하려고 하는, 삐뚤어진 간판만 보고서 두려움을 가져버리는 내가 이젠 밉다.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지. 나는 과연 좋은 손님일까.
나를 친절히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해지고 순진해지는 나지만, 나를 보잘것없이 함부로 대하는 인간들에게는 한없이 적대적이고 매몰찬 성격을 가진 나. 친절한 사람이 좋다. 인류애를 느끼게 해주는 인간들이 너무도 좋다. 이 험악하고도 매정한 세상의 삭막함을 깨주는 소중한 구성원들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아닌 인간들에게는 너무나 매몰차고 적개심에 완전히 몰입된 태도를 보인다. 인간의 교활함에 지쳐 그런 인간들 앞에만 서면 화가 턱밑까지 차오른다. 존재하지 않던 폭력적 감정이 몰려오기까지 하기에. 진정 이것이 내가 이 험난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인 걸까. 어쩔 수 없는 천성인 걸까. 물론 정답은 없지만, 수정해야 할 답안인 것은 확실해 보여서. 적어도 이제는 강한 기개를 찾아 마음의 변화를 위한 촉매를 찾아나가야 할 듯싶다. 조금 더 넓게, 조금은 더 편하게.
⠀난 악한 사람인 것 같진 않다.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들의 곁에, 내가 머물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 본인들 곁에 악한 사람들을 둘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난 다행히 그런 인간은 아닌 듯싶다. 그렇지만 남모르게 애매한 불안감이, 안 그래도 좁은 내 관계 속에서 항상 도사리고 있다. 나를 떠나진 않을까. 내가 너무 과한 애정을 억지로 주었나. 나도 모르게 사소한 결례를 범했나 하면서. 항상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인다. 어찌 이리도 사람이 나약해 빠졌는지. 내 사람들만은 잃고 싶지 않은 탓에 내 마음이 그 좁은 관계라는 링 속에서 항상 져주고 있는 듯 보인다. 난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닌데. 어쩌면 요번 시국에 가장 적합한 인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관계에 몸져누웠다. 누구보다 거리를 잘 두어서, 누구보다 사람을 가리기에. 관계의 폭이 좁은 탓에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았고, 그러지 못했다. 진정 모범시민의 모습이었을까. 좁은 관계마저 더 이상 좁히고 싶진 않아 더욱 마음을 졸였던, 조심히 지냈던 순간들. 이런 내가 맞는 걸까. 악한 사람인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옳은 인간은 아닌 듯하다. 결여된 인간성에 너무도 나약하고 숨기 바쁜 인간이라서.
⠀허나 바보 같은 인간은 이런 입맛을 가진 스스로에 꽤나 만족을 해버린다. 주변에 좋은 인간들만이 깔끔하게 남아있는 것이 너무나 편안할뿐더러 내게 안정감을 선사하니까. 좁디좁은 내 식탁 위에 맛있는 반찬들만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내가 가릴 게 없어서. 힘들게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오로지 행복한 고민만이 남아있기에, 내가 친절히 맛있게 먹어줄 일밖에 남지 않아서. 너무도 고마울 따름. 그러나 이런 삐뚤어진 입맛이 영원히 내 좁은 식탁의 안정감을 가져다 주진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생선 속 가시도 발라보고, 밥 속에 박힌 콩도 몰래 빼먹으면서 다소 귀찮게 식사해 볼 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일하게 좁은 관계만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반찬의 가짓수를 좀 더 늘려볼까나. 더 넓은 식탁을 구해봐야 할까. 내 입맛에 맞든 안 맞든 간에 조금 더 안정적인 식탁에 앉아 다양함을 골고루 접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내가 어떤 입맛을 가졌는지 더욱 궁금해보고 찾아 나서야 하겠지.
⠀적대심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오랜 시간을 갖고 궁금증을 가져봐야겠다는 것일 뿐, 내가 경멸하는 것들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봐도 내 삐뚤어진 입맛에 맞지 않는 인간이라면, 더 이상 궁금해할 이유가 없으니까. 가차 없이 외면해버릴 나다. 내 입맛에 맞는 더 다양하고 많은 반찬들과 맛집들을 찾아 나서려고 할 뿐, 억지로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을 입안에 쑤셔넣으려 애쓰진 않을 것이라서. 그럴 만한 인간도 못된다. 무자비하게 내몰거나 아예 다가올 틈도 주지 않는 그런 악짓거리만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물론 내가 나약해 빠진 탓이다. 무슨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점점 넓어지는 관계 속에 숨기 바쁜 겁쟁이일 뿐이라서 그렇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넓혀져만 가는 관계는 그 속을 답답함과 증오로 가득채울 뿐이라서. 허나 더 이상 완전히 숨고 싶진 않기에 쑥스러운 발을 관계라는 좁은 선 바깥으로 조금 내밀어볼 생각이다. 그러면 이 삐뚤어진 입맛에 조금이나마 변화를 줄 수 있겠지. 내 발을 무참히 밟지만 말아주기를. 적개심에 다시 움츠러들고 싶진 않아서. 결여된 무언가를 지닌 채 내게 다가와 내가 끈을 더 조여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조금 더 상냥한 두 발을 모두 내밀어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