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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요일 Nov 24. 2022

가련함이 뒤덮을 뿐인 날씨라서요

D-406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이면, 내 통증은 더욱 악랄하게 커져만 간다. 이상하게도 끄느름하게 오랫동안 내리는 비는 내 아픈 상처를 더욱 짓누른다. 내 몸 곳곳을 계속해서 쑤시는 탓에, 괜스레 마음까지 아려오는 순간. 결국 무기력해지고 마는 하루의 끝을 나는 씁쓸하게 맛본다. 흐린 날씨 위에 자주 몸져누워 본 기억들로 인해, 이제는 몸과 마음이 나약해지고 곳곳이 쑤셔올 때면 비가 곧 내린다는 것을 안다. 궂은 날씨가 축 처져 저기압의 기분을 나타낼 때, 상대적으로 내 통증 주변의 압력은 무심히 높아져만 가기에. 평상시보다 나를 지지해 주던 힘들이 좀처럼 정신을 못 차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나 스스로를 매번 부드럽게 만들어주던 것들이 신경이 곤두서게 되면서 악랄한 통증으로 변해 나를 억누르고 있다.


⠀오늘도 내 썩어문드러진 통증은 바깥으로 어떻게든 티를 내보이려 불그스름하게 부어오른다. 결국 걷기 힘들어지는 약해빠진 육체와 신경들. 더 이상 어딘가를 향하기가 버겁다. 더러 내 정신도 저마다 곳곳으로 흩어져 버려 찾기가 힘들다. 내가 이 무거운 비구름 밑에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이 날씨는 한없이 내 몸을 무기력하게 만들기에 난 좀처럼 일어서기가 무척 힘겹다. 이런 나약함으로 대체 내가 이곳에서 무엇과 싸울 수 있을까. 순간순간의 감정을 글로 휘갈기며 당장의 통증을 조금이나마 아물게 하는 것. 무턱대고 고통을 활자들에 맡겨 바깥으로 덜어내버리는 것. 이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나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인다. 보잘것없는 두 손가락으로 네모난 판들을 바쁘게 두들기며 내 마음을 꺼내어 남들에게 내보이는 것. 뜨거움 속에서 남들에게 애써 웃어 보이는 것. 이것밖에 내겐 남아있는 게 없다. 네모난 이 전자 덩어리도 더 이상 내게 오락적인 즐거움을 선사해 주지 못하기에. 단지 메모장을 꺼내어 메스꺼운 머릿속의 토사물들을 게워내는 데 쓰일 뿐이다. 난 이 날씨 속에서 불쾌한 잡념들을 바깥으로 쏟아내기만 하지, 무언가를 착실히 삼키지는 못한다.


⠀계속해서 통증이 반복적으로 쓰라려 온다. 이곳에서 이 통증을 챙겨주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이토록 나를 고통 속으로 내몰아버리는 이유가 뭘까. 매번 더욱 나를 지치게 하는 이 공간과 이 날씨. 흐린 분위기가 너무나 내게 압도적으로 다가와서 그런 걸까. 저 궂은 비바람이 내 마음속까지 야멸차게 닿아버리는 탓일까. 그만 멈춰줬으면 좋겠다. 모두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뿐이기에, 조금만 그 힘을 저버려 주었으면 좋겠다. 난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내 흩어진 정신들을 주섬주섬 찾아다니기 바쁜 탓에 가련함이 내 온몸을 뒤덮을 뿐이라서. 나를 에워싼 옹색한 변명들이 통증을 더욱 악의로 가득 채울 뿐이다. 조금이나마 나약함을 지닌 채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을까. 이 외딴곳을 채우고 있는 내 절절한 감정은 온 사방이 막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기에, 내 투박한 활자들로 그 감정들을 이곳에 쥐어짜내야만 해서. 궂은 날씨 속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내 흐린 감정들을 찾아 다시 일어서야만 하는 것. 이는 이러한 날씨 속에서 꽤나 우악스럽게 다가와 나를 심란하게 만들 뿐이다. 이 날씨 탓에 모두가 통증을 느끼지 않았으면. 그냥 무심히 우리 곁을 조용히 떠나 주었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견실한 마음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 만큼만. 모두가 통증을 덜어낼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을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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