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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요일 Nov 30. 2022

위로의 선율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

D-372

매번 음악 속에 남몰래 움츠러든 마음을 조심스레 꺼낸다. 서정적인 문장들에 크게 집착하지 않아도, 울적한 멜로디와 분위기만으로도 감정들이 그 속에 파묻혀 헤어 나오지 못한다. 심심찮게 그 품 속에서 위로를 얻는 내 구겨진 마음과 감정들. 정리되지 않던 마음속 응어리들이 에세이의 선율에 흠뻑 젖어 금세 안정을 되찾는다. 며칠 내내 풀리지 않던 과제가 마침내 해결되는 느낌을 받곤 한다. 가사들을 곱씹어 보면 그 감동이 더욱 극대화된다. 철학적이고도 직설적인 문장들이 내 가슴을 후벼판다. 가사에 담긴 은유에 취해 가슴이 먹먹해지며 나의 지난 추억과 미련, 슬픔, 기쁨들이 다시금 뼈에 사무친다. 이처럼 순간순간의 감정에 걸맞게 마음에 와닿는 여러 음악들이 매번 쓸쓸한 인간을 애써 위로한다. 내가 듣고 있는 음악에 또 다른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왠지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노래 하나로 파생되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과 마음들, 그리고 그 순간을 같이 흐느끼고 공감하는 우리들에 있어 음악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일상에 조용히 스며들고서 선량한 기운을 퍼뜨리며 인간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담담하게 읊조리는 가사와 멜로디에도 그 속에 절절한 감수성이 담겨 있다. 무심하게 내던지는 어조 속 잔잔한 흥얼거림에 떨리는 온몸을 얌전히 맡기게 된다. 단 몇 초만에 지난날에 머뭇거리던 마음들을 떠오르게 하며, 나를 차분함과 짜릿함이 혼재된 공기 속에 호흡하도록 온전히 내버려 두는 것이다. 생각보다 잔잔하고, 전혀 산뜻함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는데도 마냥 나만을 위해 쓰인 노래처럼 무척이나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평생 주머니에 품고 다니며 위로받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 귓속을 축축이 적시고만 싶게끔. 내 품 속에 담겨둔 멜로디를 딱 듣는 순간, 스쳐가는 지난날의 추억들과 지금의 모습이 교차하며 쌓여 있던 설움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메마른 목소리에 담겨있는 절절함이 부풀러 올라 나의 오래된 추억에 닿는 것만 같다. 쌉싸름한 기억 속 어디론가로 나를 데려가서는 기어코 내 눈물샘을 툭툭 때려 터뜨려 버리는 잔잔한 선율에, 별안간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던 뭉클함이 흘러나와 가사의 적당한 울림과 함께 음악에 흠뻑 취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한편의 뮤지컬을 본 것만 같이 눈앞에 무언가가 황홀하게 그려지며 추억들이 쑥스럽게 춤을 춘다.


⠀지친 일상 속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의 품 속에 파묻혀 체온을 나누고만 싶어진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서글픔이 주르륵 흘러나온다. 가삿말과 내 이야기가 그리 닮아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그립고 마음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며 순간 아련해지기까지 한다. 나도 모르게 무심히 내 눈꼬리를 더욱 쳐지게 만드는, 그런 와중에 발끝은 리듬 속에 까딱거리게 하는 음악들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어쩔 때는 또 색다른 위로로 다가온다. 쓸쓸함이 서려 있는 선율 위에 올라타는 순간, 밝고 따뜻함을 지녔던 내가 전원이 꺼진 듯 금방 차가워진다. 하나같이 적당히 울적하고도 적당히 녹녹한 내 음악들이 추운 겨울 속 얼어붙은 도로 위에 홀로 서있는 것처럼 느껴지게끔 나를 완전히 놓아버린다. 그 순간만큼은 혼자인 게 적잖이 괜찮게만 느껴진다.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외로움에 당당한 자태를 내보이며, 그렇게 색다른 꿈속에 또 한 번 빠져든다.


⠀내 편 하나 없는 것만 같을 때, 그 무엇도 여의치 않을 때 나는 귓속으로 나만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조용히 불러낸다. 너만큼은 내 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혼자 속으로 읊조리며 남몰래 기교 섞인 위로를 삼킨다. 불면에 시달리는 감정들이 외로운 새벽을 맞이하기 전에 재빨리 달달한 수면제를 귓속으로 삼켜내는 것. 삽시간에 잡음이 없는 담백한 멜로디와 구절들이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내려앉으며 촉촉하게 몸속을 적신다. 힘겹게 참아왔던 감정들과 생각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순간들이 가끔씩 찾아오는데, 그럴 때마다 노래의 품 속에 잠겨 시원하게 속을 비워낸다. 어쩔 땐 비참한 내 모습에 또 한 번 무너지기도 하지만, 속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지기에 나름 괜찮게 느껴진다. 음악은 우리 모두가 덮어두고 숨겨왔던 감정들의 모서리를 건드려 달달함으로 차가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추운 겨울 속의 따뜻한 유자차 같다.


⠀까맣게 잊고 있던 지난날의 음악들을 다시금 꺼내어 들을 때면, 어떤 노래들은 추억의 퀭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그 시점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곡들마다 소소한 추억들이 깃들어 있다. 어릴 적 아빠와 목욕탕에서 나올 때, 독서실에서 졸음을 이겨내지 못해 책 위에 얼굴을 파묻힌 때, 서울에 올라와 무기력함에 혼자 소리 없이 눈물로 얼굴을 뒤덮던 때가 생각난다. 음악이란 참 신비하고도 어쩔 때는 재수 없다. 그때만이 품고 있던 행복과 설움에 다시 나를 푹 담가버린다. 그만큼 음악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은 채 책을 편 적이 거의 없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기 직전 늘어만 가는 자습시간을 놓치기 싫어 몰래 한쪽에 이어폰을 꽂고서 공부에 몰두했고, 소음을 막겠다는 핑계로 헤드셋을 끼고서는 그 속에 몰래 노래를 틀었다. 그 정도로 음악의 구애 없이는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했다. 가사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데도, 단순히 그 노래가 풍기는 분위기에 충분히 가슴이 저릿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삶의 활력을 얻었다. 애석하게도 남들이 즐겨 듣는, 인기차트에 놓여 있는 휘황찬란한 곡들에 그리 잘 호응하지 못한다. 감성을 파고드는 꽁꽁 숨어있는 선율들에 마음이 이끌려, 어느샌가부터 암중 속 환락에 흠뻑 매료된 인간이 되어버렸다.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머금는 인간들에 무척 정이 간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어쩌면 슬픔이 많은 인간들이 내겐 고혹적으로 다가온다. 더 나아가 비슷한 성질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더 확 끌린다. 우리만이 공유하는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착각에 휩싸여 내적 친밀감이 저절로 생긴다. 각자 다른 환경에 놓인 인간들이 결국 비슷한 아픔과 고민들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 이를 깨닫게 만드는 것은 우리만이 찾는 음악들이 자아낸 동질감을 지닌 아픈 눈물들이다. 서로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고만 싶게 만드는 탓에 같은 선율을 즐기는 사람에게 무척 마음이 간다. 귀를 빌려 고독을 음미하는 인간들도 저마다의 아픔을 지니며 살아간다. 꾹꾹 참아내다가 결국 음악 속에 파묻혀 눈물자국을 남기는데, 그 흔적을 애써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마냥 근사하다. 음악들에게만큼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 솔직한 감정을 터놓으며 그 속에 흥건한 잔여물을 무심히 남기는 사람들이 무척 매력 있게 느껴진다.


⠀모두가 자신의 숨겨왔던 상처를 꺼내어 그 아픔을 감상했으면 좋겠다. 아무 생각 없이 노래 한 구절에 문득 눈물을 떨어뜨리고 무심히 닦아내며,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내일을 살아가는 것. 이런 삶도 꽤나 싱그러운 전율을 느끼게 하며 새롭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 스스로에게 자꾸만 압박을 가했던 순간들을 가삿말로 되돌아보면 어느샌가 후련함 속에 숨 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넘실대는 감정의 파도가 외려 유쾌하게 다가올 따름이다. 음악이라는 여러 감정들의 향연 속에서, 같이 그 응어리들을 공감하고 흐느끼며 우리만의 감성에 흠뻑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는 이미 곪아 터져버린 아픔마저 애써 속에 숨겨놓고는 너무도 담담한 척 살아간다. 속에 쌓아 두며 야멸차게 외면하는 것이 아닌, 위로의 선율을 빌려 복잡한 감정들을 마음껏 흘려보내는 것이 어떨까. 눈치 보지 않고, 괜한 감정 낭비 없이 온전히 위로받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절절한 구애를 펼치는 음악들을 부둥켜안은 채, 통렬한 울음을 터뜨리며 마음껏 몸부림치는 것. 이보다 은밀하고도 우아한 이중생활이 있을까.


⠀분명히 우리는 저마다의 리듬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동력을 얻는다. 음악은 각자의 사정으로 응어리진 사람들의 감정을 모조리 말랑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 이유에서 음악은 대단히 큰 가치가 있다. 그런 다채로운 선율과 분위기, 그 속의 서정적이고도 직설적인 문장들, 따뜻한 손길처럼 그것들을 우리에게 온전히 전하는 담담한 목소리까지. 위로의 예술을 만들어 내기 위해 힘쓰는 그들은 격하게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분명히 그들로부터 살아낼 용기를 얻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을 봐서라도 힘 있게 살아가야 한다. 알콜 없이 오로지 음악에 취해 눈물을 흘렸던 순간들을 갚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즐겁게 살아내는 모습을 그들에게 내보이며 다시는 그 노래를 빌려 울지 않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변화무쌍하게 각박해져만 가는 삶 속에서 한사코 가식적인 모습만 보이며 끝없이 약해질 수만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증명해야만 한다. 당신들로부터 힘을 얻고서 기어코 다시 일어섰다는 것. 그것이 위로의 선율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어쩌면 최고의 대갚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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