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AI가 모든 곳에 스며들다

by 민준

"안녕하세요, 초등학교 사생대회 심사를 부탁드리려고 연락드렸는데요..."


처음엔 잘못 걸린 전화인 줄 알았다. 나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공학박사다.

미술은커녕 색깔 구분조차 서툰 편이다.
“죄송하지만, 전 미술 전공이 아닙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맞습니다,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린 거예요.”

순간 어리둥절했다. 미술과 전혀 관련 없는 나에게, 왜?


예상치 못한 의뢰

상대방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이번 대회는 조금 특별합니다. 아이들이 AI를 활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대회거든요.”

“AI로… 그림을요?”

“네, 미드저니나 달리(DALL·E)를 씁니다. 아이들이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AI가 그림을 그려주죠.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의 프롬프트가 얼마나 창의적인지,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평가해주시면 됩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초등학생들이 붓 대신 프롬프트를 쓴다고?


충격적 현실과의 마주침

며칠 뒤, 대회 현장에 갔다. 컴퓨터실에 앉은 아이들 앞에는 물감도 붓도 없었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림을 AI에게 설명해 보세요!”

아이들의 눈빛은 반짝였고, 키보드 소리는 쉴 새 없이 울렸다.

“마법의 숲에서 유니콘이 무지개를 타고 나는 그림!”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피자 행성, 판타지 스타일로!”

“우리 강아지가 슈퍼히어로 옷을 입고 하늘을 나는 모습, 만화풍으로!”


몇 초 뒤 화면에 나타난 그림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정말 사생대회 맞아?”


ChatGPT Image 2025년 8월 26일 오전 10_11_58.png




아이들의 놀라운 적응력

심사를 시작하자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아이의 작품은 전문가가 그린 듯 완벽했다.

“이 그림은 어떻게 만들었니?”
“처음엔 ‘귀여운 고양이’라고 했는데 너무 평범해서, ‘빅토리아 시대 드레스를 입은 고양이가 달빛 아래 정원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 유화 스타일, 매우 세밀하게’라고 바꿨어요.”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9살 아이의 입에서 ‘빅토리아 시대’, ‘유화 스타일’이란 단어가 나온 것이다.

다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프롬프트를 50번 넘게 고쳤어요! 처음엔 ‘로봇’이었는데 너무 밋밋해서, ‘친구가 되고 싶은 로봇’, ‘외로운 로봇’, 마지막엔 ‘친구들과 놀고 싶은 로봇이 공원에서 기다리는 모습’으로 바꿨어요.”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감정과 상황을 계속 바꿔가며 그림을 진화시키고 있었다. “이것도 창의성 아닌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선생님들의 혼란

쉬는 시간에 담당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솔직히 저희도 처음엔 반대했어요. 이게 무슨 미술 대회냐고요.”
“그런데 왜 하게 되신 건가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것도 창작 활동이잖아요. 붓으로 하든, AI로 하든 결국 표현력이 중요하니까요.”

그 말은 맞았지만, 선생님의 표정에는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심사의 딜레마

나는 고민 끝에 심사 기준을 이렇게 나눴다.

그림의 완성도: 50%

프롬프트 창의성: 30%

아이디어 독창성: 20%


완벽한 답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현실에 맞는 균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1등을 한 아이에게 소감을 물었다.
“기분이 어때?”
“신나요! AI가 더 똑똑해지면 제가 더 멋진 그림을 만들 수 있겠죠?”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아이들에게 AI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협력 파트너였다.


교육과 예술의 경계가 흔들리다

그날 이후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학교는 AI로 시 쓰기 대회를 열고,

영어 수업에서는 AI가 초안을 쓰고 학생이 다듬고,

수학 시간엔 AI가 문제 풀이 과정을 설명한다.


교육 현장은 이미 달라지고 있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갤러리엔 AI 작품 전시가 많아요. 일부는 ‘이건 예술이 아니다’라 하고, 일부는 ‘새로운 표현 도구’라며 적극 활용해요.”
특히 젊은 작가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대중문화와 유튜브까지

TV를 켜니 개그맨들이 AI로 음원을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ChatGPT로 가사를 쓰고 AI 음악 툴로 멜로디를 만드는 미션. 시청자들은 박수를 쳤다.

유튜브에선 더 극적이었다.
“10분 만에 AI로 히트곡 만들기!”
“ChatGPT + Suno AI로 앨범 제작!”
조회수는 수십만, 댓글에는 호기심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이제 음악도 재능 없어도 되는 거네요?”
“전공자인데 뭔가 허탈하네요ㅠㅠ”


전문성의 재정의

집으로 돌아오며 곱씹었다.
나는 미술을 모르는 사람인데도 미술 대회 심사를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제 전문성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 전문성: 한 분야의 깊은 지식

새로운 전문성: 여러 분야를 연결하고 AI를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


AI 시대의 전문성은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아이들이 보여준 미래

아이들은 연필로 글을 쓰듯, AI로 그림을 그렸다.
그들에게 AI는 특별한 게 아니라 당연한 도구였다.

이 아이들이 자라 사회로 나오면, 지금의 기준은 아무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는 변화

회사 회의실에서 AI가 문화를 흔드는 걸 봤다면, 이번엔 교육·예술·대중문화 현장에서 그 파급력을 체감했다.
더 이상 AI를 피할 수 있는 영역은 없었다.


다음 이야기

그날의 ‘프롬프트 미술대회’는 내게 결정적 깨달음을 주었다.
AI 확산은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며, 전문성의 경계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것.

하지만 새로운 시장이 생기면 늘 그렇듯, 그 틈을 노리는 이들도 등장한다.
며칠 후, 나는 ‘AI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쏟아지는 강의와 책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AI 프롬프트만 잘 쓰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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