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멈출 수 없는 질주

by 민준

착각이라도 좋았다.

조금은 틀려도, 어딘가 정지해 있는 도구였으면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의존하기 시작한 그 AI는, 멈추지 않았다.

매 순간,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뉴스 알림의 홍수

어느 날부터 휴대폰이 폭격을 시작했다.

“OpenAI, GPT-4.5 공개” “Anthropic, Claude Sonnet 4.5 출시” “Google, Gemini 3.0 발표”

“Meta, Nano AI 공개” “Veo 3, 영상 생성 혁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이름들이 쏟아졌다.


ChatGPT Image 2025년 12월 6일 오후 10_00_24.png


어제의 최신이 오늘의 구식 이번 달에는 GPT-4.5가 최고라고 했다. 다음 달엔 Claude Sonnet 4.5가 더 낫다고 했고, 그다음엔 Gemini 3.0이 판을 바꾼다고 했다.

최신이라 믿은 도구가, 일주일 만에 구시대 유물이 되는 기분.


뭐가 최신인지 모르겠다 동료가 물었다. “지금 뭘 쓰는 게 제일 낫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제는 GPT-4.5, 오늘 아침 뉴스에선 Sonnet 4.5, 그리고 내일은 또 바뀔 테니까.

“그냥, 그때그때 쓰는 거 써야죠.”

회사의 혼란 회사도 다르지 않았다.

6개월 전: “ChatGPT Plus 도입”

3개월 전: “Claude로 전환”

이번 달: “Gemini도 도입”

다음 달: “결정된 건 없습니다”

IT팀은 지쳐 보였다. “이제 뭘 도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할루시네이션이 줄어들다

그래도 확실히 달라진 건 있었다.

초기에는 AI가 존재하지 않는 논문을 인용하고, 근거 없는 통계를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출처도 확인 가능하고, 정답률도 높다. 할루시네이션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는 거의 믿을 만하다.”

거의 맞는데, 가끔 틀린다 그런데 문제는, 95%가 맞는 정보 속에 섞인 5%의 오류였다.

어느 게 그 5%인지, 우리는 모른다.

더 무서운 정확성 예전에는 이상한 답이 쉽게 티가 났다.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논리적이라서 틀린 줄도 모르고 받아들인다.

95%가 맞으니까, 나머지 5%도 그냥 믿게 된다.


검증의 포기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검증을 그만뒀다. 왜냐고?

대부분 맞으니까

확인할 시간도 없고

설령 확인해도, 내가 더 정확할 자신이 없으니까

“그냥 믿는 게 편했다.”

적응도 못 하고 다음이 온다 Cursor에 겨우 익숙해졌을 때, 누군가 말했다.

“이제 그건 느려요. 다음 걸 써야죠.”

겨우 따라잡았다고 느낀 순간, 달리기 경주에서 다시 뒤처졌다.


교육의 무용

회사에서 3개월짜리 교육을 들었다. “GPT-4 완벽 활용법” 열심히 수강했고, 수료증도 받았다. 그런데 마침 그 주에 GPT-4.5가 나왔다.

“배운 게 다 구식이 됐어요.”

6개월이 6년 같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본 댓글.

“2024년 초에 AI 공부 시작했어요.”

“지금 와선 거의 다 쓸모 없어요.”

6개월마다 전부 다시 배워야 하는 세상.

6개월이 6년처럼 느껴진다.


그럼 뭘 배워야 하나?

회의 시간, 누군가 물었다. “그럼 우리는 뭘 배워야 하나요?”

강사가 대답했다. “변하지 않는 원칙을 배워야죠.”

하지만 요즘은 그 ‘원칙’조차 자주 바뀐다.

각자 다른 시대를 산다 같은 시간, 같은 회의실에 앉아 있지만 우리는 각기 다른 시대를 살고 있었다.

A 대리: 최신 Gemini 3.0으로 초고속 자동화 B 과장: GPT-4로 평균 속도의 업무 처리

C 부장: 아직도 무료 GPT-3.5로 수동 작업


같은 회사, 다른 시간.

격차의 가속화 최신 AI를 쓰는 사람은 업무 속도가 10배, 품질도 높고, 계속 앞서간다.

반면 구버전을 쓰는 사람은 같은 속도로 일하고, 점점 뒤처진다.

6개월 차이가 10년 차이처럼 느껴졌다.


멈출 수 없는 이유

그럼에도 달릴 수밖에 없었다.

남들도 다 달리니까. 내가 멈추면 바로 도태되고, 멈추는 순간, 구세대가 되어버리니까.

업데이트 강박 어느샌가 이런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검색창을 켠다. “새로운 AI 나왔나?” “업데이트는?” “내 도구는 아직 최신인가?”

업데이트를 안 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방향도 모르고 그리고 점점 더 무서워졌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방향일까? 끝은 있을까? 아니, 목적지는 있는 걸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멈출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질주의 끝 AI에게 물어봤다. “AI는 어디까지 발전할까요?”

AI가 대답했다.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기술적 한계와 속도를 고려할 때…”

AI조차, 자기 미래를 알지 못했다.


다음 이야기

멈출 수 없는 질주. 매달 바뀌는 최신 AI, 적응도 못 하고 밀려드는 다음 세대.

격차는 벌어지고, 방향은 흐려지며,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도구로 달리고 있다.

2019년, 우리는 함께 AI를 배웠다. “파이썬은 개발자들이나 쓰는 거 아닌가요?”

2022년, 우리는 조심스럽게 AI를 쓰기 시작했다.

남몰래, ChatGPT 창을 열며. 2024년, 우리는 각자의 AI를 만들었다. 소버린 AI를 꿈꾸며.

2025년,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시간에서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각자도생의 ‘각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서로와 따로 사는 걸까, AI와 따로 사는 걸까?”

그리고, 이 질주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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