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편
같은 사물도 배경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 보인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위치를 올바른 곳에 가져다 놓았을 때 그는 아름다워진다.
함석헌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존경받는 것도 올바른 위치의 배경 앞에 섰기 때문이다.
함석헌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 아름다움이냐? 첫째 알아야 할 것은 아름다움은 하나를 나타냄이라는 것이다. 너희는 옷이 아름답다면 곧 그 옷감이 무언지 그 빛깔이 어떤지 그것부터 생각하지만 아름다움은 그 내용되는 자료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 나타내는 방법에 있다. 조화에 있다.
조화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됨이다. 전체의 각 부분 부분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잘 어울려 하나를 이루는 것이 곧 조화다. 조화(調和)의 화(和)는 하나됨이다. 저고리와 치마가 따로 놀아서는 아니 되고, 옷과 신발이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양복에 미투리를 신어도 보기 싫거니와 일하는 베잠방이에 구두를 신어도 보기 싫다. 그래 짚신엔 제날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말을 타면 경마 잡히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울림, 하나됨 중에서도 더구나 생각해야 할 것은 배경과의 어울림이다. 이 작은 아름다움보다 큰 아름다움이 정말 아름다움이요, 부분의 아름다움보다 전체의 어디랄 것 없이 아름다운 것이 참 아름다운 것인데 그것은 그 배경이 결정한다.
꽃병을 책상머리에 놓으면 아름다워 보이지만 들 가운데 내다 놓으면 보기가 싫고, 반대로 초초한 들국화 한 대를 병에 꽂아 책상머리에 놓아서는 그리 고운 줄을 모르겠으되, 온 세상 다 찬서리의 습격을 받아 눈에 뵈는 것이 오직 쓸쓸한 것뿐일 때, 허트러진 풀 속, 꾸부린 소나무 혹은 찡그린 바위틈에 그 청초한 한 송이가 외로이 서는 것을 보면 말로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달리아 · 모란 같은 것을 단으로 묶어준다 한들 어찌 바꾸겠나. 그러고 보면 들국화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배경에 있다. 그 서는 동산, 그 가을, 그 하늘, 그 바람에 있다. 또 기러기를 그 깃이나 소리로 볼 때에는 아름답달 것이 별로 없지만, 푸르고 한없이 넓은 가을 하늘가에 날려놓고 그 한 소리 길게 뽑는 것을 들을 때는 공작이, 봉황이, 꾀꼬리가 떼로 몰려든다 해도 비길 바가 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기러기의 아름다움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요 그 사는 배경에 있다. 장엄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려거든 장엄한 배경이 있어야 하고, 그윽한 아름다움을 보려면 그윽한 배경이 있어야 할 것이다. 높은 산 식물의 아름다움이란 몇천 자 이상의 높음과, 강한 햇빛과, 날카로운 공기와, 한없이 넓은 하늘이 합하여 지어낸 것이지, 결코 그 풀씨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격의 아름다움도 그 사는 자연·사회·역사·정신적 체계를 배경으로 삼고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제 한 몸을 제 소유로만 알 것 아니라, 커다란 사회·역사적 배경 속에 자기 자신을 놓는 사람인 담에야 위대한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다.
함석헌 저,《함석헌 저작집 세트》, 한길사, 2009.
-「아름다움에 대하여」 (제1권 『들사람 얼』)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201271400000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