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편
허무하다면 허무한 인생에서 우리가 그나마 가치 있고, 영원한 것을 찾는다면 무엇일까?
죽어도 죽지 않는, 영원히 사는, 다시 부활하는 그런 것이 있다면 '뜻'이 아닐까 한다.
뜻있는 선비가 당당한 것은 영원한 가치를 마음속에 품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은 삶과 죽음이 따로 없다.
다음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었다는 ‘중용’ 제1장에 나오는 말이다.
“하나의 나뭇잎을 주체로 보면, 가을이 되어 이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죽음의 세계로 가는 것이 되지만, 나무 전체의 삶을 주체로 보면 이 나뭇잎의 떨어짐은 나무 전체의 삶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이를 깨달은 나뭇잎은 떨어지는 것이 곧 사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떨어질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도 성(性)을 주체로 인식하게 되면, 육체적인 죽음은 삶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에 죽는 것을 곧 사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성(性)에 따라서 살면 죽음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다.”
<이기동 역해, 《대학.중용 강설》,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1.>
삶과 죽음이란, 전체로 본다면 결국 하나 안에서 서로 변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조건이니,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장자가 말한 ‘천하를 천하에 숨길 때’ 죽음과 삶은 결국 하나인 것이다.
다음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이다.
“바다 위 파도에는 시작과 끝, 즉 생과 사 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파도가 비었다고 말했습니다. 파도는 물로 가득하지만, 그의 분리된 자아는 비어있습니다. 파도는 바람과 물의 도움을 얻어 생겨난 현상입니다. 만일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지는 자신의 형상에만 집착한다면, 그는 삶과 죽음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하지만 파도가 그 자신을 물의 일부라 여기고 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면, 그는 생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파도는 밀려왔다 사라지지만, 물은 생사를 초월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틱낫한 지음, 강옥구 옮김,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장경각, 2015.>
우리 인간 개개인을 주체로 본다면 파도처럼 사라지고 마는,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지만, 파도가 그 자신을 물의 일부라 여기고 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듯이 인간이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 여기고 자연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면 인간은 생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인간 개개인은 사라지지만 자연은 생사를 초월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용’ 제1장과 같은 해석이다. 만일 죽음이 이와 같다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인 것이다.
함석헌은 그 '뜻'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뜻은 우주와 인생을 꿰뚫는 것입니다. 뜻은 맨 첨이요 나중이요 또 지금입니다. 모든 것이 뜻에서 나왔고 뜻으로 돼가고 뜻으로 돌아갑니다. 뜻을 깨닫는 것은 생각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삽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역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마음이라야 죽은 가운데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새해가 온 것은 생명이 스스로 하는 신비의 뜻으로 인해 된 것입니다. 생명은 갱신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변해서 되돌아가는 바퀴가 있고, 그 바퀴가 돌아감으로써 영원히 새롭고 자라는 뜻을 드러내며 번져나갑니다. 물은 흘러흘러 내려가다가는 피어올라 구름이 되고, 구름이 됐다가는 다시 비가 되어 내려옵니다.
불은 타서 타서 올라가서는 막막한 허공 속에 흩어지고, 흩어졌다가 다시 새 물질로 엉켜 내려와서는 또 탑니다. 그러는 동안에 생명이 나오고 식물 · 동물이 나오고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사람은 나서는 자라서 죽고, 죽고는 또 납니다. 나라는 일어나서는 퍼져나가다가 망하고, 망하고는 또 새 나라로 일어납니다. 그러는 동안에 생각이 나오고 학문이 나오고 예술이 나오고 뜻이 드러납니다.
물이 만일 김으로 되어 오르는 일이 없다면 모든 시내는 다 썩었을 것입니다. 햇빛과 바람으로 인한 날려버림이 없다면 이 세계는 시체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인생에 나고 죽음, 역사에 흥하고 망함이 없었더라면 잘사는 놈은 계속 잘살고, 못사는 놈은 영 못살아 문화의 발달이란 없었을 것입니다.
하루에는 밤낮이 있고, 한 해에는 사철이 있고, 지구는 365일 만에 한 바퀴를 돌게 생긴 이 세계, 그 위에 사는 게 인간이요, 그 인간이 짓는 게 역사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자라고 역사가 발전하여 뜻을 드러내고 이루기 위해서 있는, 스스로 하는 뜻의 신비의 법칙입니다. 이 새해는 그렇게 돼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해는 무섭고도 고마운 것입니다. 즉 무서운 것은 거기 심판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마운 것은 거기 불쌍히 여김이 있고 다시 하는 기회가 있으며, 모두 높은 새 생명으로 살아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는 우리를 용서합니다. 해방합니다. 새 출발을 명령합니다. 새해에 살게 된 것은 새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스스로 하는 절대의 뜻이 하는 명령입니다.
함석헌 저,《함석헌 저작집 세트》, 한길사, 2009.
-「새해의 말씀」 (제5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