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 있는 곳을 먼저 보라
마음이 힘들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불안, 애정결핍, 자기연민, 열등감....... 이제는 거의 기본 옵션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 다들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마음을 고친다. 심리학 글을 읽고, 자기 이해를 하려 애쓰고, 운동도 한다. 필사적으로 멘탈을 관리한다. 그런데도 잘 안 나아진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나도 그랬다. 치료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편이었는데도 그랬다. 편안해지고 싶어서 정신과를 전전했는데 도무지 나아지는 게 없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사춘기 이전까지 나는 씩씩하고 고집 센, 소위 ‘햇살캐’에 가까웠다. 그런 내가 위축되기 시작한 건 가정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부터였다. 부모님의 갈등과 이혼, 그 과정에서 겪은 정서적 방치는 어린 나에게 너무 큰 생채기를 남겼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두 분의 정확한 이별 사유를 모른다. 각자의 입장만 피력하기 바쁜 부모님 사이에서 나는 늘 관찰자이자 피해자였다.
어머니가 떠난 후 남겨진 집에서 예민한 성정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무언가를 해보려 할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네가 그런 걸 어떻게 하냐"는 냉소였다. 지금이야 그것이 표현에 서툰 아버지 나름의 걱정이었다는 걸 알지만, 십 대의 나에게 그것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감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회성을 충분히 학습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등 떠밀리듯 선택한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는 늘 겉도는 기분으로 살았다.
나는 두 개의 얼굴로 살았다. 밖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사회인 연기를 했지만,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 밀려오는 공허함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의 애정을 갈구했고, 타인의 작은 눈짓 하나에도 밤잠을 설쳤다. 스스로를 '폐급'이라 정의하며 매일 밤 자책의 늪에 빠져 지냈다.
졸업 후 시작된 사회생활은 더 혹독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업무, 존중보다는 비난이 앞서는 상사, 그리고 그 사이에서 "회사가 다 그런 거지"라며 인내를 격려하는 주변인들. 그때부터 의심의 방향이 바뀌었다. 환경이 아니라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예민하구나.
나는 사회성이 없구나.
나는 유리 멘탈이구나.......
직장에 오래 머무를수록 자기혐오는 기본값이 되었고,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잊어버렸다. 그 상태에서 자존감 올리는 법을 읽고 운동을 해본들 소용이 없었다. 사람이 망가지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오래 있으면 안 되는 환경에 너무 오래 있었을 뿐이다.
결정적인 변화는 멘탈 관리법을 배워서 온 것이 아니었다. 3년을 버티던 회사를 관둔 순간부터 회복이 시작됐다. 퇴사 후 1년 정도 자아를 탐색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지만, 여전히 불면증은 계속되었고 미래는 두려웠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인생의 중요한 본질 하나를 깨달았다.
우리는 흔히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올까. 나는 그것이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과 안전한 공간에서 온다고 믿는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3년 다닌 회사를 관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라는 안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좋지 않았던 환경에서 안정적인 가정으로 거듭난 덕분이었다. 이건 미담도 용기 서사도 아니다.
단지 '조건'에 대한 이야기다.
돈이 있었기에 당장 무너질 걱정 없이 잘못된 환경에서 나올 수 있었다.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사람을 망가뜨리는 환경에서 탈출하게 해 준다. 그것이 바로 '안정'의 본질이다.
이후 옮기게 된 새로운 직장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비난 대신 "잘했어요", "고생했어요"라는 당연한 존중이 있는 곳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환경에 놓이자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애정결핍도, 자기연민도, 열등감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늘 날 서 있던 신경이 느슨해지자 그 빈자리에 비로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을 고친 적이 없다. 정신병을 극복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를 망가뜨리던 환경에서 나왔고, 나를 존중해 주는 환경으로 거처를 옮기자 마음은 스스로 치유될 준비를 마쳤을 뿐이다.
지금 혹시 스스로를 탓하며 마음을 고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나는 왜 이럴까"라는 자책에 빠져 있는가. 그렇다면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길 바란다. 지금 당신이 몸담고 있는 환경이, 당신이라는 꽃이 피어나기에 너무 척박하고 오염된 땅은 아닌지 말이다.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단지 환경이 문제였고, 도망칠 안정이 없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