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점심시간으로부터의 독립

니치(Niche)한 인간의 자전

by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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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라는 조직은 가끔 거대한 '정상성 테스트기' 같다. 특히 점심시간, 식탁 위로 오가는 대화들은 그 테스트의 가장 피곤한 전장이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요즘 유행하는 것들의 이름을 읊는다. 하지만 그 대화의 이면에서 튀어나오는 언어들은 지나치게 날것이라 때로 나를 아찔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연애 프로그램에 대해서 얘기할 때면,


"그 여자, 가슴 진짜 크더라."

"그 남자는 진짜 못생겼던데? 왜 나왔대?"


라고 말하는 것이다.


화면 속 인물을 향한 원색적인 평가와 외모 비하가 밥알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유영한다. 당사자가 눈앞에 없다고 해서 한 인격체를 이토록 납작하게 눌러버려도 되는 걸까? 무례함이 '솔직함'으로 둔갑하는 그 현장에서 종종 놀라고는 한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언어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집단 속에서,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묘한 소외감이 밀려오곤 했다. 사실 이 '무난한' 사람들 틈에서 섞여 산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다.


입사 초반, 나는 이 거대한 무리에 섞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여기저기 껴서 친목질을 해야 고급 정보를 얻고 라인을 탈 수 있다"는 선배의 조언은 마치 생존 법칙처럼 들렸다. 동료들과의 티타임에 한 번이라도 빠지면 나만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일까 봐, 혹은 뒤에서 내 이야기가 나올까 봐 불안해하며 영혼 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들이 공유하는 그 대단하다는 '정보'의 실체는 누군가의 가십이거나 영양가 없는 소문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직장인이지만 '사업가 마인드'를 탑재하기로. 이곳은 나의 영원한 종착지가 아니며, 나의 소중한 에너지는 타인의 사생활을 품평하는 소음이 아니라 내 인생의 경영에 쓰여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억지로 맞추던 주파수를 꺼버리자 비로소 나만의 고요한 궤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궤도'의 압박은 끈질기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도 화살은 날아온다.


"유부녀들이야 집에 일찍 가도 되지만, 아가씨인 네가 이런 날 집에 그냥 들어가면 안 되지. 나가서 남자라도 만나야 할 거 아냐?"


그 질문을 마주한 순간, 나는 내가 이 사회의 '소수자'임을 절감했다. 이성을 좋아하는 게 분명한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인데도 말이다. 결혼 적령기라는 여성에게 부여된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순식간에 교정의 대상이 된다.


나는 그저 나로서 존재하며 내가 정의한 행복을 살려는 것뿐인데, 무난함이라는 규격에 맞춰진 이들은 끊임없이 나의 평온을 '결핍'이라 규정한다.


괴짜로서, 소수자로서 이 촘촘한 정상성의 그물망 사이를 빠져나와 나를 지키는 일은 매 순간이 저항이다.


혹자는 이런 나를 두고 '중2병'이라 냉소할지도 모른다. 남들 다 하는 걸 거부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모습이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정작 나 자신의 영혼이 마모되는 줄도 모르는 상태보다, 차라리 '나'라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유난스러워지는 이 병세가 훨씬 건강하다고 믿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다름이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한 독립인 셈이다.


나에게는 오늘, 그 누구의 참견도 침범할 수 없는 엄연하고도 밀도 높은 일정이 있다. 퇴근 후 본가에 들러 미뤄두었던 방 정리를 할 것이다. 오래된 물건을 비워내며 내 마음의 군더더기도 함께 덜어내는 의식이다. 나의 보금자리인 오피스텔로 돌아가는 길엔 오직 나만을 위한 선물을 쇼핑하며 나 자신을 대접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문 앞에 도착해 있는 공기청정기를 정성스레 세팅할 계획이다. 기계가 뿜어내는 깨끗한 공기가 내 방의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낮 동안 회사에서 묻혀온 탁한 언어들까지 정화해주길 바라면서.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의식이 시작된다. 갓 배달된 지코바 치킨에 따끈한 밥을 비비고, 넷플릭스의 세계로 빠져드는 일.


사람들은 "오늘 같은 날은 나가야지"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가장 완벽한 성취와 휴식은 바로 이 익숙하고 포근한 일상 속에 있다.


누군가는 나를 '이상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니치(Niche)하다'고 할 것이다. 상관없다. 무리의 주파수에 억지로 나를 맞추느라 소음 속에서 길을 잃느니, 차라리 조금 고립되더라도 선명한 나만의 주파수를 지키며 살고 싶다. 나의 행복은 타인의 허락이 필요 없는 독립적인 영역이니까.


올해의 마지막 문장을, 나를 걱정하는 척하며 무례했던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나의 평화는 당신들의 걱정보다 훨씬 견고하며, 나의 고독은 그 어떤 파티보다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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