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진짜 미마야."
퍼펙트블루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정확히는 루미 병문안을 마치고 난 뒤 차에 올라타 "난 진짜 미마야"라고 말하며 백미러를 보고 미소 짓는 미마가 좋았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2018년쯤이었다. 그때의 내겐 퍼펙트블루의 심오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이 작품이 그냥 '혼란스럽고 특이한, 기괴한 연출'로 명작이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보니 그 모든 혼란은 철저히 의도된 것이다. 영화 전체가 미마의 시점에 감정적으로 침잠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보는 내가 미마처럼 혼란스러워지는 방식.
줄거리
퍼펙트블루는 아이돌을 그만두고 배우가 되려는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아이돌로 활동하던 미마는 그룹을 탈퇴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그 선택 이후부터 그녀의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팬들로부터는 배신자 취급을 받고, 새로운 직업 환경에서는 ‘이미지’를 망가뜨릴 각오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식의 압박을 받는다. 실제로 미마는 출연한 드라마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찍는다. 몸을 내주는 연기를 해야 했고, 그 장면은 그녀의 내부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그 무렵부터 미마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린다. 익명의 팬사이트에 누군가가 자신인 척하며 일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고, 주변에서 기이한 일들이 하나둘 벌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미마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또 다른 미마’를 보기 시작한다. 그건 바로 아이돌 시절의 밝고 맑던 모습 그대로의 미마. 그녀는 말한다. "그건 네가 아니야. 네가 망쳐놨어." 미마는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그 와중에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미마가 연기를 시작한 그 드라마의 관계자들이 차례차례 죽어나간다. 그리고 미마는 어쩌면 그 모든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스스로를 몰아넣는다. 하지만 그녀는 기억이 없다. 어느 날 깨어보니 피로 얼룩진 집 안, 손엔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고, 거울 속 자신은 낯설게 웃고 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은 미마의 감각 속에 완전히 침잠하게 된다.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이 드라마 촬영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혹은 그녀의 망상인지 알 수 없어진다. 편집도, 시간도, 공간도 흐트러져 있다. 관객조차 마치 미마처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혼란의 끝에서, 자동차 안에서 백미러를 보는 미마. 그리고는 웃는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영화 내용이 이해가 안 됐어도,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곤 했는데 이제는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안다.
모든 게 끝장나도, 자기를 잃어도, 마지막에 남은 문장은 고작 한 줄일 수 있나 보다. 그리고 나는 그 한 줄이 갖는 힘을 알고 있다.
진짜로 힘든 시간엔 복잡한 말은 오히려 거슬린다. 상황을 묘사하려고 애쓸수록 감정은 더 멀어지고, 결국 남는 건 아주 단순한 말 하나뿐이다.
"나는 나야."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이 좋다. 미마가 미쳐가는 게 아니라, 끝까지 버텨낸 사람처럼 보여서. 모든 걸 잃고 나서야 자기 얼굴을 되찾는 사람처럼 보여서. 자기가 누구인지 다시 말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여서.
나는 그 말을 하는 미마를 선망만 하던 시절을 지나왔다. 나도 그녀처럼 단정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시점에 와 있다.
난 진짜 이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