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이 된 사건사고: 똥범벅 크루즈를 봤다. 크루즈를 배경으로 한 미디어를 좋아해서 재밌겠다 하고 틀었는데, 의외의 문화 충격을 받고 거기에만 꽂혀서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됐다.
사건은 단순하다. 대형 크루즈가 바다 한가운데서 고장이 났고, 전력과 물, 화장실 기능이 모두 마비됐다. 표류하게 된 상황에서 크루즈 측은 승객들에게 “소변은 샤워실에서 처리하고, 대변은 빨간색 비닐봉투에 넣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공지를 내렸다. 상황을 들으며 “아 진짜 최악이네…. 근데 뭐, 어쩌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달랐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혔다”, “사람 취급도 못 받았다”며 감정적으로 격렬히 반응했다.
이게 그렇게까지 모욕적인 일인가?
물론 꺼림칙하고 불쾌한 건 알겠지만, 시스템이 모두 마비된 상태에서 차선책으로 내린 결정 아닌가? 그냥 다들 고생 좀 하면서 버티면 되는 문제 아닌가?
비슷한 감정을 코로나 때도 느꼈던 것 같다. 전 세계가 마스크와 백신으로 시끄러웠던 그 시기, 한국은 다소 불편하고 번거로운 방역 지침들을 비교적 묵묵히 따랐고,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도 봤다. “이 정도는 다 같이 참자”는 분위기가 있었고, 나 역시 별다른 의문 없이 받아들였다. 반면 미국은 ‘개인의 자유’라는 이유로 마스크조차 거부하는 사람이 많았고, 거리두기나 백신도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때도 느꼈다. 이건 단순히 이기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자유라고 생각하느냐’의 차이구나. 곱씹을수록 이게 단순한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자유’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미국은 개인의 신체와 사생활에 대한 경계가 굉장히 철저하다. 배설이라는 건 그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부분이고, 절대로 남에게 드러나선 안 되는 ‘사적인 것’이다. 화장실도 돌려 말하고, 냄새나 소리는 최대한 감춘다. 그들에게 ‘pee’, ‘poop’ 같은 단어는 유치하게 느껴지고, ‘나 화장실 좀’이라는 말조차 조심스러워한다.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다. 우리도 공공장소에서 똥 얘기를 대놓고 하진 않지만, 가까운 사이에서는 “나 똥 마려” 같은 말도 웃으며 할 수 있다. 약간 민망할 수는 있어도, 그게 수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똥 냄새도, 방귀도, 다 그냥 사람 사는 냄새라는 정서가 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 사실 나는 예전에는 미국인들처럼 행동했었다.
어릴 때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서툴렀고, 그래서 지나치게 독립적이었다. 누가 내 얘기를 묻거나, 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불편했고, 나 역시 그런 걸 대화 주제로 삼는 게 불쾌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도 내 몸의 ‘지저분함’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자유롭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꽁꽁 감싸고 있는 일종의 ‘결벽’ 같은 거였다.
근데 나이가 들면서 그게 조금씩 바뀌었다. 어울리는 관계들이 늘어나고, 누군가와 진짜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다 보니, 내가 생각보다 더 허물 많은 사람이란 걸 받아들이게 되더라. 어차피 다 똑같다는 걸 알게 되니까, 말할 수 있는 것도, 웃어넘길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똥 얘기를 편하게 한다고 해서 존엄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미국인들에겐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더 오픈마인드가 됐기 때문에 이런 데서 자유로워진 거라고 느낀다.
물론 요즘 우리 세대도 점점 더 개인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나 포함 주변 2030들은 윗세대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배려라는 이름 아래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때론 솔직하게 선을 긋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변했다고는 해도, 진짜 미국인들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뿌리부터 다르다. 서로의 불쾌감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철저한 배려이자, 때론 감정이나 생리현상조차 공유하지 않는 종류의 거리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우리가 가진 약간의 촌스러움, 민망함, 그리고 허물 많은 대화들이 더 좋다. 비상 상황에서 똥을 어디에 싸야 하느냐보다, 그런 걸 나눌 수 있는 정서 자체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누군가 “그건 좀 냄새나지 않냐”고 해도, “뭐 어때, 다 똑같지” 하고 웃을 수 있는 그 자유가 나에겐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에겐 미국보다 한국이 더 따뜻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