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오전 업무 시간. 과자를 먹다가 문득, 내가 소리를 너무 많이 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바삭, 와작.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소리였다. 그때는 그냥 ‘나 과자 먹고 있다’는 사실이 내 존재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동료 직원이 컵을 아주 천천히, 거의 소리가 나지 않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나도 컵을 내려놓았다. 별일 아니었지만, 무언가가 단번에 비교되었다. 나의 동작은 늘 크고 빠르고 분명한데, 그 사람의 행동은 조용하고 부드럽고 느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와, 품격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머물렀다. 품격. 왜 그렇게 느꼈을까. 단순히 조용하게 행동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안에 숨겨진 어떤 태도 때문이었을까? 내가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면, ‘조심스러움’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조심스러움은 단순히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무언가를 대할 때 함부로 하지 않는 태도를 말하는 것 같다. 사람을 대할 때, 물건을 내려놓을 때, 문장을 쓸 때. 조심스럽다는 건 느리다는 거고, 느리다는 건 그만큼 한 번 더 생각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왜 늘 급할까. 나는 왜 과자를 조용히 씹지 못하고, 왜 텀블러를 놓을 때 ‘탁’ 소리를 내고, 누군가의 말을 자주 끊게 되는 걸까.
어떤 이유가 있을까, 나는 왜 조심스럽지 못한 걸까.
내 안에 무언가가 늘 ‘빨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빨리 말해, 빨리 끝내, 빨리 이해해.’ 어릴 때부터 나는 그게 똑똑하다는 증거인 줄 알았다. 반응이 빠르고, 말을 잘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 그렇게 보이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왔다. 그런데 빠른 만큼, 세심하지 못한 순간들이 많았다. 대화할 때 중요한 포인트를 지나쳐버리고, 상황을 너무 앞서 판단해서 오해를 사거나, 누군가에게 말을 마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는 식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조금은 조급했다. 누가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까 봐,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고, 느린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것은 경쟁이라기보다는 자기 보호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멈추면 위험하다”는 막연한 경계심. 그건 내 몸에 밴 어떤 태도였고, 성격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익힌 패턴 같았다.
그런데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빠르다는 건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반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눈치 빠르다고 말할 때면 은근히 뿌듯했다. 내가 어떤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기분. 내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는 착각. 하지만 요즘은 그 속도가 점점 피로해졌다. 생각보다 나는 늘 안간힘을 쓰며 움직이고 있었다. 감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여유로워 보이는 내가 사실은 속으로 늘 긴장 상태인 것처럼.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늦게’ 움직이려 한다. 컵을 천천히 내려놓고, 길을 걸을 때도 발을 조금씩 늦게 떼어본다. 과자를 씹을 때도 한 번 더 조심하고, 누군가 말할 때 끝까지 듣고 난 후에야 입을 연다. 이건 연습이 필요하다. 내겐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감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움직임의 차이가 내 일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걸 느낀다. 무엇보다도, 내가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몸에게 알려주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나는 ‘급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걸, 요즘 들어 조금씩 알게 된다. 조급함은 나를 똑똑해 보이게 할지 몰라도, 나를 깊어지게 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느림 속에 품격이 있고, 기다림 속에 배려가 있고, 말의 간격 속에 진심이 있다는 걸 점점 더 실감하게 된다. 조용히 컵을 내려놓는 사람을 보며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은 아마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느린 행동은 상대를 의식하는 태도고, 급한 말투는 자신을 방어하는 태도라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긴다. 마감에, 일정에, 사람들 사이의 간격에. 나 역시 아직도 어딘가로 급히 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아주 잠깐이라도, 의식적으로 느려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해보려 한다. 내가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앞서 나가려 했던 그 마음을 이제는 조금 내려놓아도 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걸 몸과 마음이 이제야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성격이 급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 ‘고쳐야 할 결점’이라기보다, ‘조금씩 달라져도 괜찮은 성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금 더 천천히 말하고, 천천히 내려놓고, 천천히 느끼는 일. 그 모든 것들이 결국엔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급한 나도 괜찮고, 느린 나도 괜찮다. 다만, 예전보다 지금이 조금 더 조용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