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본질에 대한 팀구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감정은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걸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행위 자체에서 시작되는 걸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과연 상대라는 존재 때문인지, 아니면 사랑이라는 의식을 수행할 때 느껴지는 설렘과 만족감 때문인지 선명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상대가 특별해서 마음이 움직인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고 싶은 내 마음이 먼저였고 그는 단지 그 마음을 투사할 대상이었던 것인지. 사랑은 참, 그렇게 모호한 경계 위에 놓인다.
어떤 날은 그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다정함은 그 자체로 따뜻하고, 관심은 관심대로 고맙다. 나를 향해 건네진 선물과 말들이 사실은 '연인이니까'라는 규칙을 충실히 따른 것일 뿐이라 해도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애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 모호함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떨림, 잘 맞지 않는 어긋남, 무언가 미세하게 빠져 있는 느낌. 그 공백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랑의 모양은 금세 낯설어진다.
언젠가 사귀던 사람이 내게 상품권을 건넸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 쇼핑 좋아하잖아. 예쁘게 말했고, 그 마음은 고마웠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 한 켠에서 작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이건 나여서 준 걸까, 아니면 내가 그의 '애인'이라서 준 걸까?
애인은 평소에도 선물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SNS에 무언가 올리면 바로 알림이 뜨도록 설정해 두었고, 지나가다 예뻐 보이면 작은 선물을 건넸고, 카페에서는 늘 디저트 두 개를 고르도록 권했다. 다정함의 양만 놓고 보면 부족함은 없었다. 오히려 과분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이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정교하게 따라온 것이 아니라면—'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보편적 연인의 역할'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나라는 개체보다 '연애라는 행위'에 충실해 보였다.
통화를 하면 그의 하루 이야기가 먼저 쏟아졌다. 조용히 듣고 있다가 문득 생각했다. 지금 이 말들은 나에게로 흐르는 건가, 아니면 그저 흘러나올 공간이 필요해 내 쪽으로 떨어지는 건가. 나를 향한 말인지, 나를 향한 독백인지.
그는 나를 많이 좋아했다. 아마 나보다 더. 그 마음이 부담스러웠던 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사랑을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애인과 헤어져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은 애인이라는 존재는 누구라도 괜찮다. 잘 맞고, 웃고, 함께 따뜻할 수만 있다면. 모든 관계는 언젠가는 끝난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무심한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마음 한 칸을 남겨둔다. 사랑에 내가 잠식되지 않도록. 너무 깊이 들어가면 헤어질 때 오랫동안 무너진다. 흉터가 천천히 아물어가는 시간을 나는 견디기 싫다. 그래서 내 사랑은 조금은 여백이 있다. 숨이 트이고, 살아낼 수 있는 공간. 그 여백이 차갑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가볍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 방식의 생존이다. 나를 잃지 않으려는 방어막이기도 하고, 사랑을 미래가 아닌 현재에 두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선물은 고마웠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나'의 모양을 따라온 것이 아니라면 사랑의 결이 흐릿해진다. 사랑은 결국 존재가 보일 때 선명해진다. 상대가 내 말을 기억하고, 지난주에 내가 고민하던 지점을 떠올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과 싫어하는 향수를 구분해낼 때—그때 비로소 사랑은 추상에서 구체로 변한다.
사람 중심의 사랑은 '너라서' 시작된다. 반면 행위 중심의 사랑은 '연인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매뉴얼로 움직인다.
기념일엔 선물이 필요하고, 연락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서운하면 화해해야 하고,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고, 스토리에 올린다. 모두 사랑의 한 방식일 수 있다. 그런데 그 행위들이 서로의 존재를 강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사랑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한 의식처럼 느껴지면 마음은 금세 허공에 떠버린다. 선물은 선물이지만 마음이 비어 있는 것처럼.
나는 그 차이를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사랑은 많이 준다고 깊어지는 것이 아니다. 양으로 질을 대체하는 순간, 관계는 누군가의 온기가 희미해질수록 천천히 공기가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사람을 보고 흐르는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지고, 행위를 따라 흘러가는 사랑은 거품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헤어진 뒤에야 더 선명해진 것도 있다. 나는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다만 나라는 부분이 사랑의 중심에 놓여있지 않았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의 사랑은 뜨거웠지만, 내가 그 사랑 안에서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애인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나로서는 충분했을지 몰라도, '나라는 사람'으로서 환영받고 있다는 확신을 얻기는 어려웠다.
사랑이라는 행위만 남으면 결국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의 장식품이 된다. 누군가의 다정함 속에 있으면서도 외로운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보이지 않으면, 아무리 다정해도 마음은 텅 빈 자리에 머문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사랑은 방향의 문제라고. 사람 속에서 행위가 나오면 따뜻하고, 행위 속에서 사람이 드러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선물은 고마웠다. 마음도 있었다. 다만 언젠가 그 선물에 '나'의 모양이 담겼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확신했을지 모른다. 이 사람은 사랑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나를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