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일상에서 사람 한 명을 떠나보냈다.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오고, 걱정해 주는 그 고운 마음씨에 온기를 느꼈다. 그런데 그 걱정들이 무색하게도 나는 이번 이별에서 유난히 멀쩡했다. 이상할 정도로. 평소처럼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출퇴근도 잘했다. 심지어 전 애인이 헤어지기 전에 선물로 보냈던 과자를 회사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웃었다. 이별의 충격이 몸에 닿기도 전에 나는 이미 정상 궤도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내가 이렇게 괜찮은 이유는 단순히 마음이 식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관계 자체가, 애초에 균형을 이루지 못해서다.
불안이 많은 사람과 비교적 안정적인 사람의 관계. 초반에는 조화롭다. 안정적인 쪽은 상대방을 케어하고, 지지를 보낸다. 그러면 불안한 쪽은 정착감을 얻는다. 하지만 그 관계는 결국 안정적인 사람이 감정, 속도, 리듬, 케어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만 유지된다.
이번 연애에서 나는 그 사람의 불안과 우울을 잘 알고 있었다. 알았기 때문에, 좋아하니까, 그를 달래고 싶었다. 부정의 수렁에서 건져올리고 싶었다. 건강한 정보들을 찾아 보내고, 몸을 챙기라고 선물도 사 주고, 흔들릴 때는 진정시키고, 불안을 다독였다. 처음에는 멋져 보이기만 하던 그의 빈 구멍을 발견한 순간,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이 샘솟았다. 완벽해 보이지만 남 모르는 결핍이 있고, 지탱하며 인생을 살아내는 사람은 결핍 하나 없는 사람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내 안의 돌봄욕구가 크게 자극받아 더 푹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스멀스멀 기시감을 느꼈다. 찜찜했다. 그리고 그가 제공하는 무수한 인풋에 조금씩, 조금씩 피로가 쌓였던 것 같다. 그러는 사이 그는 나 모르게 불만을 쌓아 두었고, 임계점에 달한 순간 뜨거운 감정 덩어리를 뱉어냈다.
"우리 그만할까?"
그 순간 내 피가 차갑게 식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 있어서 경황이 없지 않았으니까.
내게 이런 경험은, 이런 사람은 두 번째였다. 지난 연애에서도 비슷했다. 내 어리광에 "시간 좀 갖자.", "우리 안 맞는다. 헤어지자."하던 사람이었다. 충동적인 이별 선언. 그 사람과는 깨졌다가도 서로 울고불고 매달려 다시 만났었지만 결국 처참한 막을 내렸던 기억이다. 그때의 나는 정말 많이 흔들렸다.
내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인가?
내가 조금만 더 어른스러웠더라면.
내가…….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를 향한, 그를 향한 미움에 시달리며 살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가 이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까…….
어떻게 해도 덮이지 않던 기억, 아무는 속도가 너무 느린 상흔.
그러던 중 새로운 사람, 그러니까 이번에 헤어진 사람을 만났던 것이다. 그와 함께하면서도, 그를 사랑하면서도 옛 사람에 대한 기억 자체는 걷히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짙어지고 있었다. 그에게서 그가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리고 정확히 똑같은 전개였다.
"우리는 안 맞아."
"헤어질까?"
불만을 켜켜이 쌓아 두다가 갑자기 던지는 것이 똑같았다.
똑같은 상황에, 완전히 다른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과거 그 순간이 재연되는 그때, 나는 흐름을 명확히 읽었다. 감정 억제, 폭주, 충동적 선언, 관계 붕괴. 지난 경험이 이미 가르쳐 준 구조였다. 그래서 그가 갑자기 "그만할까?"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나는 붙잡지 않았다. 감정 폭탄에 대한 나의 대답은,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
예전의 나라면 사정도 하고, 대화하자고 매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저 "이게 이 사람의 감정 처리 방식이구나"하고 받아들였다.
내가 이렇게 멀쩡한 이유는 마음이 무뎌서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여린 사람이다. 이전의 그 큰 상처 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단단한 보호막이 생겨 있었던 덕분이다. 지난 인연이 남긴 큰 흉이 이번에는 나를 지켜주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게 이런 걸까. 같은 상황에서 무너지긴커녕 차갑기까지 하던 나를 보며, 그 상처가 성숙한 방향으로 치유되었음을 처음 실감했다.
누군가는 내게 너무 냉정하다, 매정하다 말할 수도 있다. 나도 동의한다. 어쩌면 상처가 치유되었다기보다 방어기제가 더욱 단단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어디가 나쁜가. 끝까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죽을 때까지 온전한 내 편은, 가족도, 애인도 아니고, 이 넓은 우주에서 오직 단 한 사람, 나뿐이다.
이번에 내가 나를 지켜낸 경험을 통해 비로소, 지난 인연에게 입은 상처를 완벽하게 극복해냈다. 새로운 사람으로 덮은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이별에서, 다른 차원에 올라 있던 내가 과거의 나를 구원한 것이었다.
불안하고 예민한 사람이 이별 후 가장 먼저 하는 건 흔적 지우기다. SNS 댓글 삭제, 언팔, 기록 정리. 마치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것처럼 만드는 행동들. 하지만 이런 정리는 진짜 정리가 아니다. 감정이 너무 흔들려서, 봤다가는 무너질까 봐 눈을 가리는 것이다. 혼란이 커서 정리하는 척을 하는 것에 가깝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활동량을 늘린다. 친구들과 잘 노는 것처럼 보이고, 이미 새로운 사람이 생긴 것처럼 연출하고, 활발한 척 퍼포먼스를 한다. "나 괜찮아"를 과하게 증명하려는 사람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진짜 괜찮은 사람은 패턴이 변하지 않는다. 괜찮아서 조용한 것이다.
이 패턴도 두 번째다. 첫 번째 때는 몰랐다. 그 사람이 정말 나랑 헤어지고 멀쩡해진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이제야 안다.
솔직히 말하면, 대화를 끝낸 직후 먼저 다 끊어낸 건 나다. 그를 버리듯이, 그에게서 도망치듯이. 그리고 나도 그의 SNS를 잠깐 봤다. 나도 사람이니까. 궁금해서 힐끔. 잘 지내는 척하는 모습에 순간 신경질이 났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나는 다시 일하러 갔고, 친구들과 채팅했고, 내 일상을 살았다. 감정이 어두운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았다.
그는 나보다 훨씬 불안하고 예민한 기질을 갖고 있다. 우울 수치도 높다. 그런 사람이 이별 직후 매일을 평온하게 보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지금 그의 행동은 미련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미련을 숨기고 싶은 자존심이 만든 방어가 아닐까. 나는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우쭐해지지도 않고, 그를 무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단지 사람의 구조를 이해할 뿐이다.
이별 후에 사람이 곧장 괜찮을 수는 없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단계 감정 변화를 경험한다. 싸우고 헤어진 직후의 경우, 후련하고 개운하면서 동시에 화가 끓는다. 사람에 따라 기간은 다르나 나는 사흘 정도 그랬고, 나를 채우던 분노가 사그라든 이후 공허해졌다. "헤어지기 전에 우리가 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여전히 만나고 있지 않았을까?", "뭐 하고 있을까?", "나한테 연락 안 해?" 혼자서 소설을 쓴다. 하지만 역시나, 딱 거기까지다. 다시 연락하고 싶다는 생각은,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는, 고작 나 하나가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오만을 부리지 않는다. 계속 만나고 있었어도 언젠가는 터졌을 일, 다시 만나도 반복될 상황이라면 그 사람에게 주었던 그 값진 모든 것을 저버리는 게 정답이다.
그리고 헤어진 지 일주일이 되려면 며칠이 더 남은 시점, 어제부터인가 그의 빈 자리가 실감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매일 와 있던 메시지가 없고, 메신저 상단에 고정해 두었던 대화방이 없고, 밤에 나를 먼저 재워 주던 메시지가 없다. 이제 그의 목소리도 없고, 남은 건 그가 남긴 선물들뿐이다. 버리지는 않는다. 물건에는 죄가 없으므로.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헛헛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인정한다. 그가 조금 보고 싶기는 하다고. 이건 사랑이 남긴 미련이 아니라 인간적인 애정과 연민에 기인한 기분이다. 모두와 같은 사람이라 헛헛한 난, 그 구멍을 메우고자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한마디씩 더 걸어 보고 있다. 사람들과의 소통이 늘었다.
공허와 별개로, 내 삶의 방향은 분명하다. 나는 다시 누군가의 감정을 떠받치는 역할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이별은 누군가를 잃은 사건이 아니라, 내가 나를 완전히 되찾은 사건에 가깝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비극이 아니다. 내 삶 속 주인공의 모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