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나'와 함께라면
나는 요즘 내가 꽤 마음에 든다. 이건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서 생긴 자신감도 아니고, 억지로 긍정하려 애쓴 결과도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 문득, '아, 나 지금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있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괜히 잘난 척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아직 턱없이 부족한데 자만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그런데 지금은 안다. 이 감정은 자만이 아니라 확인에 가깝다는 걸.
예전엔,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연애나 결혼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흔들렸다. 지금, 그러니까 서른 초반의 마지막인 지금 안 만나면 나중에 힘들어진다, 나이 들면 선택지가 줄어든다, 아기 낳을 수 있을 때 낳아야 한다....... 그 말들이 전부 틀렸다고 확신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전부 맞다고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불안하게 있었다. 나는 그 말들의 옳고 그름보다도 그 말들이 내 삶에 너무 쉽게 들이밀어지는 게 불편했던 게 아닐까? 요즘은 그 감정이 또렷하다. 그 말들이 사회의 이야기일 수는 있어도 내 인생의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감각이다.
나는 소개팅이 잘 맞는 타입이 아니다. 조건부터 놓고 사람을 재단하는 구조 안에서는 마음이 잘 열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 얼굴을 직접 보기 전에 가능성과 효율부터 따지는 자리. 그 자리에서 우리는 자꾸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억지로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관계는 아니다. 그래서 차라리 '자만추'가 낫다. 운명 같은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내 리듬을 깨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속도까지 통제당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나 좋아할 수 없다. 잘생긴 사람이 좋고, 신사답지만 자유로운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어제도 오늘도 혼자 논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러니까 남자를 못 만나는 거라고. 눈을 좀 낮추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속으로 반문한다.
내가 왜 나를 낮춰야 해요?
마음도 안 가는 사람과 얼레벌레 연애하고 타협으로 결혼하고 그다음엔 출산, 그리고, 아이와 책임으로 굴러가는 삶. 그게 누군가에게는 안정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자기 소거에 가깝다. 나라는 사람을 유지하지 못한 채 하기 싫은 역할만 늘어나는 삶이라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차라리 독신이 낫다고 말한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치열한 고민과 비교 끝에 나온 선택이다.
유부녀들의 한탄을 들을 때면 묘하게 불편해진다. 지금 네 젊음이 아깝다. 나라면 더 만나 봤을 거다. 내가 너라면 그 남자 한번 자빠트렸다. 그 말들 속에는 여자는 젊을 때 예뻐야 하고, 그 시간을 최대한 써야 한다는 오래된 규범이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그 틀 안에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다. 여성으로서의 역할보다 인간으로서의 나를 먼저 두고 싶다. 가정이나 아이보다 지금은 자아실현이 우선이다. 이건 이기적인 선언이 아니라 내 삶의 순서를 정한 결과다. 순서를 안다는 건, 적어도 남의 기준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말을 입밖으로 내뱉으면, 세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안다. 세상물정 모르는 애. 아직도 철딱서니가 없는 애. 젊음은 영원하지 않아. 혼자서 늙은 여자가 돼서 후회하겠지.
그대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알고 있다면 내가 정말 세상을 모르는 게 맞나요?
사람들이 나보다 세상을 잘 알지는 몰라도, 나보다 자기 스스로를 잘 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세상보다 나를 잘 아는 내가 좋다.
나는 걱정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좁은 주차장에서 차를 넣거나 빼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얼마 전 회사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조금 헤맸다. 그런데 회사 사람들이 웃으면서 귀엽다고 했다. 평소 무뚝뚝하던 직원도 웃으며 "내가 빼 줄게!" 했고, 상사는 내가 계속 귀엽다고 했다.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실수해도 괜찮은 자리, 완벽하지 않아도 환영받는 공기. 그 안에서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를 처음으로 편안하게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괜히 더 작아졌을 텐데, 그날은 그냥 웃고 지나갈 수 있었다.
반년이나 걸렸다. 회사에서 낯가림이 풀리기까지. 나는 빠르게 사람들과 섞이는 타입이 아니다. 그동안 나는 관찰했고 조심했고 안전하다고 느낀 다음에야 조금씩 다가갔다. 그래서 지금의 안정감은 기분이 아니라 체감에 가깝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확인, 그게 나를 이렇게 단단하게 만든 것 같다.
이런 나를 놓친 구 애인은 정말 제 발로 복을 찬 셈일지도 모른다. 이 말에는 미련도 분노도 없다. 다만 지금의 나를 내가 제대로 보고 있다는 자각이 들어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내 과거만 만났고, 어떤 사람은 지금의 나를 만날 기회를 얻는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나는 앞으로도 나이 들 것이다. 한 살 더 먹기까지 2주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관리하고 내 삶을 살아가고 사람과 세계에 열려 있다면 독신인 게 뭐가 문제일까. 고독사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독은 혼자 사는 문제가 아니라 연결을 포기하는 문제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요즘 나는 확신한다.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질 것이고 내 방식으로 성공할 것이다. 폭발적으로가 아니라 조용히 누적되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거다. 나는 지금의 나를 좋아한다. 여자이기 전에, 어떤 역할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