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이 뇌물이 될 때
사장님이 큰 상을 받으셨다.
무대 위에서 상패를 들고 웃는 얼굴.
옆에서 박수 치는 사람들.
플래시가 번쩍이던 순간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그 영예로운 상의 공적조서는 내가 썼다. 며칠이 결렸는데, 처음 써 보는 거라 많이 헤매느라 그랬다. 사장님의 인적사항, 지금까지 이루신 것들, 회사 현황....... 기업인의 업적이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는 과정을 나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봤다. 그날의 장면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며칠 뒤, 팀장님의 지시가 있었다.
"그날 사진 현상해서, 액자에 넣어 선물해 드리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또 쓸데없는 일을.......' 싶었다. 귀찮기는 했어도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시켜서 하는 일이었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선물을 고르기 시작하면서도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액자에 넣을 그 수상일 사진 한 장, 그리고 한 해 동안의 활동 사진 몇 장. 그 다음에는 액자를 하나 골랐다.
그런데, 달랑 이거 하나만 드리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 포장을 해서 드려야겠다.
기왕 드리는 김에 핫팩도 한 세트 넣었다. 다이소에서 산 메시지 카드에 몇 마디 적고,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도 했다. 이상하게도 준비를 하면 할수록 손이 더 갔다. 업무라고 생각했던 것에 마음이 덧대어졌기 때문이었을까.
기업인들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 사장님도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홍길동이 따로 없어서 회사를 비우는 날이 더 많다. 그런데 오늘 간만에 사무실에 방문하셨고, 나는 '오늘이군' 싶어 때를 노렸다. 임원분들과의 회의를 마치고, 떠나시는 순간 문밖으로 따라나가 선물을 전달해 드렸다. 내 의도대로,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장님은 기뻐하며 내 선물을 받아 주셨다. 꽤 따뜻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왜 찜찜할까? 나는 이런 것을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이 아니기에 곧장 생각 해부에 돌입했다.
그 액자 속 사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을 거쳐 나온 장면이다. 공적조서를 써서 사장님이 수상하도록 해 준 게 나였고, 그 순간을 기록한 사진을 다시 골라 액자에 넣어 건넨 사람도 나였다. 팀장님이 시켜서 시작한 일이긴 했지만 그 흐름의 처음과 끝에 내가 있었다.
이건 내가 아부를 떨어서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런 체질이 아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선물을 준비하는 도중 내가 너무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쪽'으로 이동해 버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리고 그 정성이, 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구조 안의 제스처로 소비될 수 있다는 걸 알아 버렸다는 데 있었다.
사장님은 좋은 분이다. 하찮은 내 선물을 기뻐하며 받으셨고, 그 소박한 마음의 결을 알아봤을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장면이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도 읽히고, 동시에 관리와 연출의 일부로도 읽힐 수 있는 장면. 그 이중성이 마음을 찜찜하게 만들었던 거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작은 물건을 고르고, 계절을 이유로 핫팩을 챙기고,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하는 예쁜 마음.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한다.
다만 이제는, 누구를 위한 선물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