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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언서 Jul 27. 2023

선택적 농사꾼

주말 농부

 나는 전문 농사꾼이 아닌 선택적 농사꾼이다.

 물론 농사를 지을 땅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다.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냥 놀리자니 밭이 풀밭이 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는 선택적 농사꾼이다. 

 또한 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 땅은 다수가 종중 소유의 땅이다.

 예전부터 집성촌인 우리 동네는 종중소유의 땅이 마을 전체 면적의 약98% 정도 차지하고 있다. 웬만한 땅은 종중의 소유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저수지 주변은 한국농어촌공사 소유의 땅도 일부 있다. 더구나 평야 지대가 아닌 산골이기 때문에 임야가 농지보다 훨씬 많다. 대충 눈으로만 봐도 임야가 70%, 농지가 30% 정도로 농사를 지어서 살림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가난한 마을이라는 말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는 무엇을 해서 먹고살고 자식들을 교육까지 시킬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농업기술이 발달한 요즘이야 소규모 농지에서도 특수작물이나 고품질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보급되었고, 판매 등에서도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통구조가 갖추어져 있어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출·퇴근이 가능해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져 다행이지만 예전에는 비포장도로로 비좁고 꼬부랑 고개를 넘어야 마을에 올 수 있었다. 또한 도로 사정이 엉망이다 보니 비나 눈이 오면 버스가 들어오지 못해 읍내에 나가려면 2km는 걸어 나가야 그나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치는 세월 동안 졸업과 군대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위한 객지 타향살이는 먹고살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이런저런 사회 경험과 공무원 시험의 고배를 겪으며 어쩌다 운이 좋았는지 말단 공무원에 꼴찌로 합격했다.

 임용과 발령 그리고 징계 등 지난 세월 동안 파란만장하고 그리 순탄하지 못한 공직생활을 경험해야 했다. 물론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처분하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이고 스스로 헤쳐나갈 뿐 부모님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매사에 정확하고 확고하신 성격으로 누구에게 부탁하는 일을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하시는 자존심이 남다르신 분이셨다. 그런 두 분은 가는 세월을 감당하지 못하시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이후 나는 고아가 되었다. 

 그때부터 부모님께서 생전에 살던 집과 농사를 짓던 땅을 아들 삼형제 중 내가 맞아서 관리해야 하는 운명이랄까? 결과적으로 직업이 아닌 선택적 농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내 삶으로 부자지간을 연결하는 듯 이어지고 말았다.

 나는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는 선택적 농부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중 특별하지 않으며 하루만 일을 하고 하루는 무조건 쉬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땅에 심는 농작물 또한 선택적이다, 논에는 어쩔 수 없이 벼를 심어야 하고, 밭에는 관리하기 편하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양념류 채소를 심는다. 땅이 작아도 육체적인 노동에는 한계가 있어 소형관리기와 오래된 트랙터를 장만해서 일을 하고 있다. 지금 논에는 황금노들이라는 품종의 벼가 자라고 있고, 밭에는 일반 고추 350포기, 청양고추, 꽈리고추, 아삭이 고추, 가지 고추가 무더운 여름철 입맛과 식탁을 책임지고 있다. 엊그제는 지난 초여름 마늘을 수확한 밭에 들깨를 모종했다. 그리고 밭 가장자리에는 대파와 오이, 가지, 부추, 상추, 아욱, 시금치, 토마토, 참외가 먹음직스럽게 자라고 있다.

 다만 내 땅에는 참깨와 고구마, 감자는 없다.

 이 세종류의 농작물은 심고 수확하는데 어렵고 불편하다. 참깨는 날씨에 따라 수확을 못할 때도 있고, 고구마나 감자는 수확을 해서 보관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구지 심지 않고 필요에 따라 사서 먹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참깨보다 들깨는 심는다.

 물론 참기름과 들기름 각자의 특성과 사용 용도는 다르겠지만 농촌에서는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다양하게 이용한다. 또한 내가 들깨만 심는 이유가 있다. 첫째 들깨는 자라는 속도가 풀보다 빠르다. 그러기 때문에 모종 후 뿌리를 잡고 제초를 잘하면 잡초로 인한 관리가 편하다. 둘째 들깨 모종은 뿌리에 물을 적셔서 심으면 가뭄에도 죽지 않는다. 들깨는 가지가 부러져도 땅에 닿으면 뿌리를 내리는 생존력이 강한 식물이다. 셋째 거름을 많이 하지 않아도 수확량이 좋다. 오히려 거름을 많이 하면 잎새만 무성하고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넷째 들깨는 잎을 수확해서 장아찌를 담을 수 있다. 잎도 먹고 깨도 먹고 기름도 먹을 수 있는 작물이다. 다섯째 들기름은 참기름 보다 사용 용도가 다양해서 좋다.

 물론 수확하려면 수작업은 어쩔 수 없이 둘 다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경제성보다 실용성 그리고 활용성이 좋고 편한 농사만 선택해서 짓는 선택적 농사꾼인 것이다. 농사는 전문적이나 선택적이나 대충해서는 결실을 볼 수 없다. 계절에 따라 파종과 모종의 시기가 있고 시비의 차이가 있어 결코 녹녹하지 않다.

 농사는 여름이지만 벌써 겨울 김장 배추와 무우 심을 준비를 해야 한다.

 선택적 농사꾼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내 손으로 가꾼 양념 채소가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 가족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기쁨이 있기에 한여름 땡볕에도 땀을 흘리는 것이다.

 농사꾼은 땅을 속이지 못하고 땅은 땀의 노력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먹는 농산물은 땀이 만들어 낸 걸작품이라는 말이다. 다만 내가 선택한 작물은 거름을 조금만 해도 되는 것은 심기에 땅을 속이는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한 번에 수확하는 작물 보다 수시로 수확해서 먹을 수 있는 작물을 선택한다.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수확하는 작물은 벼와 들깨, 마늘이다. 아마 올해도 내년에도 같은 밭에 같은 작물이 자랄 것이다.

 암튼 내 맘대로 이것저것 선택을 할 수 있는 농사꾼이라 좋고, 싱싱한 농산물로 식탁을 채울 수 있어 좋다. 그냥 이 맛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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