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아버지와 막걸리
박 언 서
아버지는 막걸리를 자주 드셨다.
일이 끝나면 학교 선생님이나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 주전자를 돌려가며 잔이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 기웃거리면 안주를 하나씩 집어 주시기도 하고 선생님이나 어른들께 한 잔 따라 드리기도 했다. 우리의 술 문화 중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처럼 지금 생각해 보면 술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았다. 옛날 시골에서는 술안주도 변변치 못했다. 기껏해야 김치 쪼가리나 마른 북어 아니면 통조림은 고급 안주에 속한다. 어쩌다 저수지에서 물고기라도 잡으면 매운탕을 끓이고 명절이나 제사 등 집안에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고기를 먹을 일이 없었다.
60 ~ 80년대에는 우리 집이 동네에서 유일한 가게였다.
학교 앞에 있는 가게다 보니 학용품부터 과자, 술, 담배 등 규모는 작아도 시골에서 필요한 생필품은 구색을 갖춘 가게였었다. 그 시절의 화폐 단위는 1원이나 5원 10원이 주로 통용되던 화폐다. 알기 쉽게 말하면 1원에 두 개짜리 사탕이 있었던 시절이다. 술의 종류는 소주와 맥주 그리고 막걸리가 주종을 이루었다. 소주는 2홉과 4홉 그리고 간혹 가다 대병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병이 있었다. 대병은 아마 1.8리터나 2리터가 아닐까 싶다.
막걸리는 양조장에서 통으로 배달해서 팔았다.
저수지 건너 소재지에 있는 양조장에서 정기적으로 오가는 배를 이용해 나무통에 담긴 막걸리를 짐 자전거에 세네 통씩 실고 다녔다. 아마 40리터는 족히 되는 통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하얀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20리터 통이 나왔다. 나무통에서 플라스틱 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양조장에서 우리 가게로 배달된 막걸리는 부엌 그늘진 곳에 있는 커다란 항아리에 쏟아붓는다. 그리고 바가지로 퍼서 한 주전자씩 팔았다. 아마 반 되나 한 되씩도 팔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한 술을 주전자에 퍼담다가 조금씩 흘리다 보니 항아리가 있는 곳은 항상 막걸리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그때는 쪼끄만 꼬맹이들이 노란 주전자를 흔들어가며 어른들 막걸리 심부름을 왔었다.
빈손으로 주전자만 덜렁덜렁 들고 막걸리를 사러 온다. 누구네 아이인지 알고 있기에 막걸리를 퍼주고 외상장부에 달아놓는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외상이 일반적이었다. 왜냐하면 현금이 바로바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산물이나 무엇 하나라도 장에 내다 팔아야 현금을 마련할 수 있으니 우선 급한 대로 외상으로 가져다 쓰고 가을이 되면 갚는다. 그래서 가게에는 항상 두툼하고 낡은 외상장부가 있었다. 그 장부에는 동네 사람 이름이 차례대로 있고 이름을 찾아 내용을 보면 외상 한 날짜와 품목과 금액을 적혀 있다. 외상장부는 가을걷이가 끝나게 되면 서로 금액을 확인하고 이상이 없으면 현금이나 곡물로 갚아야 장부를 지우고 뒷장으로 넘겨 외상은 끊이지 않고 새로운 페이지로 이어진다.
아이들은 심부름꾼이다.
어른들은 논 밭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오면 농사일을 거들거나 잔 심부름을 해야 했다. 어른들은 일도 급하지만 일하던 손으로 가게를 왔다 갔다 할 수 없어 심부름은 아이들의 독차지다. 아마 기성세대라면 이런 기억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논두렁에서 막걸리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어린 나이에도 그 맛이 궁금해 손에 들려진 주전자 꼭지를 홀짝홀짝 빨아먹었다. 그리고 울퉁불퉁 논두렁을 가다 보면 주전자를 놓치기도 하고 흘리기도 해서 혼이 난 적도 있을 것이다. 농부는 힘든 농사일에도 막걸리 한 사발이면 시장끼도 해결되고 약간의 취기에 고단함을 잊을 수 있어 농사와 막걸리는 떼어 놓을 수 없다. 그래서 막걸리는 농주라는 별칭이 붙었을 것이다. 또한 막걸리에는 별다른 안주가 필요 없다. 그저 먹다 남은 김치나 장아찌 등 짭짤하면 그만이다. 일에 지쳐 허기가 질 때 커다란 대접으로 한 사발 들이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안주를 많이 먹게 되면 배가 불러 술을 먹기 불편해 웬만하면 간단하고 배가 부르지 않는 안주를 주로 먹는다. 마른 북어를 방망이로 두드려서 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아니면 계정에 따라 밭에서 풋고추를 따거나 마늘을 뽑아 흙을 툭툭 털어 껍질을 벗겨서 고추장에 찍으면 알싸한 맛에 막걸리와 조화가 그만이다.
어려서는 어른들은 막걸리 안주로 풋고추와 생마늘을 무슨 맛 드시는지 몰랐다.
그런데 험난한 세상 풍파를 견디며 살다 보니 풋고추의 매운맛도 생마늘의 알싸한 맛도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막걸리 안주에는 그만한 안주가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물론 마른 멸치를 같이 먹으면 환상의 조합을 이룬 안주가 된다는 것도 말이다. 또한 아버지의 입맛이나 술을 드시는 습관이 대를 이어 나에게 익숙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가끔 3형제가 술자리를 갖는다. 술 한 잔 나누며 어린 시절 자라온 얘기도 하며 속내를 털어놓고 밤이 깊도록 먹을 때가 있다. 물론 안주는 변변치 못하지만, 추억이 안주가 되기도 하고 웃음이 되기도 하고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분위기에 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술은 대중적인 술 소주인데 굳이 이것저것 가려서 먹지는 않는다. 다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술이 있으면 더 좋고 그런 시간이 좋을 뿐이다. 이제 막걸리도 주전자가 아닌 플라스틱 병에 담긴 막걸리를 먹는다. 운치는 조금 떨어져도 텁텁하고 구수한 맛은 그대로 남아 있다. 주말에 아들이 집에 내려오면 본인이 좋아하는 술이 있을 텐데 아들이 막걸리를 같이 먹어줘 고맙다. 이제 아버지의 아들에서 내 아들의 아버지로 살아가며 막걸리와 안주 먹는 습관까지 두 아들이 따라 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막걸리는 아닐지라도 술 한 잔 맛있게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부자지간이었으면 좋겠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다.
엊그제 일요일 이른 새벽에 동생이랑 산소 벌초를 하며 막걸리 한 병을 나누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