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보따리에 무엇이 있을까?

by 박언서

주말과 겹치는 장場날이 되면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아내는 장에 가자고 하면 으레 지난 장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데 왜 가냐고 한다.

그래도 나는 장에 가서 한 바퀴 돌아보고 친구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국밥집에서 막걸리나 소주 한 잔 하기도 한다. 소소한 일이지만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느낄 수 없는 시장만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이런 재미가 있어 장에 자주 간다.

장을 자주 다니다 보면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 농한기에는 장에 나오는 어르신들이 많고, 농번기에는 꼭 필요한 볼 일이 있는 사람들만 장에 나온다. 또한 장이 끝날 무렵에는 장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땅거미가 지고 장이 끝나갈 무렵에는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빨리 팔고 가려는 마음에 헐값으로 물건을 처분하려는 상인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 싶은 사람들은 끝물에 장을 나온다. 그렇게 장을 한 바퀴 둘러보면 팔고 사는 사람들만의 노하우를 알 수 있다. 야채를 파는 사람이나 생선을 파는 사람 그리고 철에 따라 나물이나 농산물을 파는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호객이나 품질로 손님을 맞이한다.

장은 정이다.

장에서는 덤이라는 인정이 있다. 양에 따라 값이 정해지지만 기본을 담아 주고 한 줌 더 올려주는 너그러운 마음 있다. 물론 가격 표시제나 정찰제도 좋지만 장에서는 물건 값을 흥정하는 색다른 맛이 있다. 흥정이 오고가는 동안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 대화 속에는 동네사람이나 친한 사람 등 인적 네트워크가 가동된다. 그러다 보면 친분이 생겨 값도 깎아 주고 덤으로 더 준다.

이런 일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이런 맛이 바로 시골에 사는 맛이며 인심인 것이다.

이제 시장도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시장 하면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무질서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시장에서도 질서가 있고 깔끔하다. 도시가 아무리 발전을 해도 시골의 장은 누가 뭐라 해도 난전이 펼쳐져야 정취도 있고 정감도 있다. 여기저기 활기찬 모습으로 흥정이 오가는 장의 풍경은 우리가 함께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마당인 것이다.

또한 장날만 되면 항상 시끌벅적하고 목소리가 커지는 곳이 바로 술집이다.

연일 농사일에 지친 농부는 장에 나오면 생선도 사고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도 장만한다.

그렇게 볼일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향하는 곳은 막걸리집이다. 허름한 막걸리집이지만 구수하고 얼큰한 국밥과 잘 익은 김장 김치가 푸짐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풍경은 볼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추운 겨울 따끈한 국밥에 한 사발 막걸리가 그립고 시끌벅적한 사람 구경이 그립다. 막걸리집에서 오고가는 대화는 동그란 탁자를 건너뛰고 동네를 뛰어넘어 사돈에 팔촌까지 안주꺼리로 등장한다. 그러다 취기가 달아오르면 자연스레 목소리가 커지고 오고가는 술잔에 인생도 담고 한탄도 담아 벌컥벌컥 들이켜고 만다. 요즘 같으면 비위생적이라 말하겠지만 이어지는 트림에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던 시절이었다.

아쉽다.

그래도 장에 가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좋다. 나라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 해도 장이라는 문화는 시골 경제의 원천인 것이다. 예전에는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마차에 실고 나온 농산물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날이 바로 장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장을 기억하고 있다.

시골 장은 농사일에 지친 마음을 서로 이해하며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인심이 나오는 것이다. 경제 논리만 앞세우고 땡전 한 푼의 손해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 마음으로는 나올 수 없는 것이 인심이다.

초면인 사람도 옆에 앉으면 금방 이웃이 되고 즉석에서 흥정을 하고 물건 값을 깎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이 시골 장이라는 문화다. 소소하지만 정이 살아 있고 많은 의미가 담겨 있고 아버지 세대나 할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장인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장에 다녀오시면 항상 가족들 옷가지와 먹을 것을 장만해 오셨다. 특히 명절이 가까워지면 설빔에 제사음식준비 그리도 반찬거리와 군것질거리를 보자기에 바라바리 싸서 머리에 이고 먼 길을 바쁘게도 걸어오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나는 그런 마음으로 장날을 기다리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오신 장 보따리를 방에 내려놓으면 어머니의 어려움은 챙길 여유도 없이 어린 나는 호기심이 우선이었다. 이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제 좋은 세상이 되어 그런 어려움도 그런 호기심도 없다.

그저 추억일 뿐이다.

이제 구지 장이 아니어도 방에 앉아서 무엇이든 구입할 수 있는 택배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옛날부터 물물교환을 시작으로 사고파는 문화로 발전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온 장은 우리의 삶과 함께 살아서 움직이는 문화인 것이다. 장에 가면 시끌벅적한 풍경이 있어 시름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어 좋고 눈으로 보고 마음이 부자가 되는 기분이라서 좋다.

돌아오는 장날에는 부모님 모시고 뜨끈한 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 사드리고 추억을 느낄 수 있도록 보여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가 아닐까?

그럼 장날 만나면 한 잔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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