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밥이다.

by 박언서

우리는 예로부터 진수성찬으로 밥을 주식으로 하는 전통이 있다.

그것도 쌀밥에 고기반찬을 최고로 치던 시절도 있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오죽했으면 진지는 드셨는지요? 라는 인사말이 있을 정도로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다. 60년대에는 쌀이 부족해서 국가적으로 혼식을 강제했고 밀가루 빵으로 급식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국책사업 중 하나로 쌀 자급자족을 이루기 위해 통일벼라는 다수확 품종을 개발 보급함으로서 쌀밥의 신화를 이룰 수 있게 되었고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밥이란 단어를 유별나게 좋아한다. SNS 등에서 사용하는 별칭이 밥心이다. 아마 밥心이란 별칭은 내가 가장 먼저 사용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식구들은 밥을 굶주린 것도 아닌데 유독 밥을 좋아하는지 동생 또한 상호가 디자인 밥이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봐 밥을 주제로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별칭 밥心의 의미는 이렇다. 따뜻한 밥은 어머니의 정성이다. 아랫목에 밥사발 묻어 놓고 남편을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밥이 바로 밥心인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밥 힘으로 산다고 했다. 밥을 잘 먹고 많이 먹어야 근력을 쓰고 일을 잘 한다고 했다. 또한 밥이 보약이라는 말도 있다. 밥 먹는 모습이 복스럽다. 식복이 타고났다. 등 밥을 주제로 하는 속담이 많이 있다.

하지만 밥의 시대가 말 그대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바쁘게 움직여야 먹고 사는 세상이 되면서부터 식성의 서구화에 따라 간편한 음식이 보편화 되면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 놓은 진수성찬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고 본다.

아침이 바쁜 사람들에게는 밥 먹을 여유조차 없다. 그래서 아침을 거르거나 빵으로 한 끼를 때우고 만다. 그러다 보니 쌀이 남아돌고 쌀 소비 촉진을 권장해도 먹혀들지 않는다.

예전에는 밀가루로 막걸리는 만들었다. 그러다가 쌀 수확이 늘어나면서 쌀 막걸리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취향에 따라 밀가루 막걸리와 쌀 막걸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판매되고 있다.

밥이 천덕꾸러기가 되기에는 시대적 흐름이나 농업의 발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젊은이들의 다이어트와 아침이 바쁜 사람들에게는 밥은 적이 되었다. 고탄수화물 섭취로 인한 비만이나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에게는 참아야 하고 먹을 여유조차 없다.

또한 맞벌이 가정이 주를 이루는 시대에 아침밥을 해서 먹고 아이를 챙기는 두 가지 일을 하기에는 솔직히 벅차다. 그러다 보니 밥 보다는 빵이나 우유 등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울 수 밖에 없다.

또한 밥도 예전 같은 쌀밥이 아니다. 건강식으로 밥을 하다 보니 쌀 보다 잡곡의 비율이 높아서 이래저래 하얀 쌀밥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보릿고개가 있었다. 가을에 수확한 쌀을 겨우내 먹고 나면 보리를 수확하기 직전의 기간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고개라는 말이 붙었을까? 그래도 그 시절 식량 걱정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좋은 시절이었다. 온 들판에 먹을 것이 있었기에 찔레나무 새순도 꺾어 먹고, 목화순도 따 먹고, 배가 고프면 남에 밭 무도 뽑아 먹었다. 무조건 입에 넣고 소화가 되고 밥이 되었던 시절 있었다.

이제 밥의 시대는 끝났다.

각 지역 농협 창고에는 벼가 가득하다.

밥이 주식이었을 때에는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이제 밥은 그냥 급식일 뿐이고 굶주리고 배고파서 먹는 밥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밥을 아직도 좋아한다. 매 끼니마다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이른 새벽에 출근을 해도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또한 비벼 먹는 것을 즐겨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비빌 때가 많다. 구지 국에 말아 먹는 밥 보다는 반찬에 먹는 마른 밥을 유독 좋아한다. 그래서 밥을 많이 먹는 밥心인가 보다.

밥은 가난하고 굶주림의 역사와 함께했다.

밥이 주는 정겨움이나 행복감은 배를 굶주려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오래전에 유행했던 말 중에는 아빠가 배고픈 시절을 말하며 “예전에는 밥도 못 먹었다”라고 하니 그 자녀가 하는 말이 “라면 삶아 먹지 왜 굶었냐고 했단다.” 그러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다가 우연하게 어느 스님의 말씀을 읽었다. 스님이 식사 전에 공양송으로 “이 밥은 대지의 숨결과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아무리 조촐한 밥상일지라도 한 끼 밥에서 우리는 자연과 생명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만드는 명언 중에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밥을 주제로 하는 글이나 방송, 신문 등은 하루에도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논해진다.

이제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을까”에서 “얼마나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로 밥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 버렸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였다 해도 우리는 버리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밥이 아닐까 싶다. 밥에 대한 애환이나 추억을 떠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의미로서 정을 느끼게 하는 밥은 식구라는 말과 공존한다. 식구라는 사전적 의미는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는 함께하는 사람”이다.

또한 집밥이라는 새로 생긴 합성어가 있다. 집과 밥을 붙여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집밥이라고 한다. 객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사서먹는 식당 밥에 이물이나 어머니가 해준 밥이 그리워 집밥처럼 맛난 음식점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은 예삿일이 아닌지 오래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이 어머니의 밥을 그리워하는 것을 변함이 없다.

그만큼 밥이라 의미는 굶주린 배를 채우고 함께 나누는 의미를 초월하여 어머니의 정성 그리고 그리움, 가족과 식구 그 이상의 끌리는 무엇이 있기에 우리는 따뜻한 밥 한 그릇에도 감사함에 눈시울을 적실만큼 세상에서 가장 맛나게 먹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밥이 있기까지 쌀은 농부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은 차치하고, 일상처럼 먹는 밥일지라도 밥의 소중함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밥을 예찬하고 싶었다.

밥心으로“언제 시간 되면 밥 한번 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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