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거리 세상!

by 박언서

국어사전을 보면 “한 무리를 이룬 동아리나 패”를 동패라고 한다.

동패라는 말은 요즘 쓰는 사람이 드물어 듣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동패를 하려면 무리가 있어야 한다. 무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뜻을 함께 하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같은 편이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끼리 편을 나누어 놀던 때에는 우리 편끼리 동패를 걸었다고 했다. 동패가 되면 놀이에서 상대편을 이기기 위해 서로 보호해 주고 협력을 하며 정보를 공유한다.

동패는 말만 바뀌었을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편을 가르고, 조직이나 단체를 만드는 형태로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의 동패와 지금의 조직이나 단체는 그 의미가 크게 다르다.

그때 그 시절 동패는 동심의 순수한 마음으로 이루러진 동패지만 요즘 조직이나 단체는 솔직히 말해 동패라 하기에는 순수함이나 자연스런 합의가 없이 인위적으로 편을 가르며 이해득실만을 위해 모였다 흩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동패와는 거리가 멀다.


예전에 동패를 먹으려면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봐야 한다. 편을 나눌 때에는 인원이나 개인의 능력, 체격 등을 기준으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 않도록 해야 한다. 상대편과 동등한 입장에서 놀이를 하는 공정함은 어린나이에도 기본 원칙으로 생각하며 편을 나누는 기특함이 있었다. 이런 것이 우리가 말하는 공정이라는 것이다.

시골의 놀이 문화는 혼자 하는 놀이 보다는 함께하는 놀이가 많아서 몇 명만 모이면 꼭 동패를 먹어야만 했다.

물론 편을 먹지 않아도 되는 놀이도 있지만 편을 나눌 때에는 항상 같은 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체격이 좋고 날쌘 형들이나 나와 호흡이 잘 맞는 그런 사람이었다. 요행이 그런 형들과 편을 먹으면 놀이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우선 마음이 든든했다.


동패를 먹고 놀던 시절에는 모든 것이 귀했다. 썰매를 만들 때 필요한 나무판자나 두꺼운 철사 그리고 꼬챙이에 쓰는 대못 등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다 그런 것이라도 구하게 되면 부모님 몰래 감춰 놓았다가 철이 돌아오면 꺼내어 만들어서 사용하곤 했다. 놀이도구는 웬만하면 손수 자르고 깎고 다듬어서 만든다. 놀이 장소는 넓은 마당이나 논바닥 그리고 겨울철에는 얼음판이다. 눈만 뜨면 누가 나오라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모이고 추운 겨울이면 할아버지가 계신 집 사랑방에서 화롯불을 쪼여가며 연도 만들고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밖으로 나가 뚝닥뚝닥 망치질과 톱질로 썰매를 만든다. 그렇게 분주한 하루가 지나간다.


모든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 가난은 어른들의 몫이었으니 아이들의 동심은 그저 때가 되면 부모님이 챙겨주는 밥을 먹고 밖에 나가 신나게 놀고 어둑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순수함이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웠었다.

이제 그런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볼 수 없다. 순수함도 동패도 지난 추억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세상이 바뀌어 요즘에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많이 하면 꼰대라 한다.

옛날 어려운 시절의 추억을 자주 말하는 사람도 역시 꼰대라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과거가 있어 현재의 발전과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과거의 흔적을 쉽게 볼 수 없는 아쉬움에 누군가는 그 흔적을 모으고 간직하며 추억을 소환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문득 지난 시절의 이맘때는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하는 생각에 추억을 끄집어내어 글도 써 보고 오래된 물건을 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본다.

이제 동패라는 문화가 사라진 요즘에도 모이고 흩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시대이다.

하루가 다르게 패를 가르고 내 생각이나 의사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편이 갈라지는 세상이 되었다.


우연히 동패라는 단어가 생각이 날 때 나는 누구와 동패를 먹으면 좋을까 생각해 본다.

맑은 날의 동패 보다는 훗날 맑은 날도 궂은 날도 가리지 않고 오래도록 동패를 먹을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이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고향 예산에서는 친구들과 모여 즐겁고 행복한 놀이를 즐기며 동심을 그리워 할 수 있는 그런 동패를 하고 싶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한 점 희망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새로운 동패문화가 이 시대에도 자리를 잡았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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