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옛날에 우산 장사와 짚신 장사 자녀를 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비가 와도 안 와도 걱정이다. 자식이 직업을 바꾸지 않으면 평생 근심을 떨쳐버릴 수 없이 살아야 할 팔자인 것이다. 이 말은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을 한 마디로 정리해 주는 내용으로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부모로서 자식을 위한 걱정은 시도 때도 없고 그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자식 잘되기만 바랄 뿐이다.
하지만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는 비가 자주 오면 우산을 팔고, 날씨가 맑으면 짚신을 팔아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을 분석하고 대응해 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제 논리를 말하면 한 곳에서 안 팔리면 다른 곳으로 자리를 바꾸거나 제품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여건에 맞이 않는 곳에서 고집을 부릴 이유가 없이 세상 흐름에 따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인 것이다.
밤사이 많은 비가 내렸다.
재난 알림톡이 수시로 문자를 보내주고 아파트의 특성상 하수관을 통해 물 내려가는 소리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설쳤다. 허둥지둥 이른 아침을 먹고 농작물이 걱정되어 시골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옥수수와 고추가 비바람에 넘어지고 마늘을 수확한 빈 밭은 군데군데 물이 고여있다. 물이야 비가 그치면 빠지겠지만 당장 옥수수와 고추를 세워야 한다. 옥수수는 키가 커서 잘 지지해서 세워야 하고 고추도 뿌리 부분이 마르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고 고추는 비가 그치면 바로 소독을 해야 한다.
모든 농작물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며칠 동안 비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땅이 물러져 작물들의 생육에 지장이 많아 바로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아무리 아마추어 농사꾼이라 해도 눈에 보이는 일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 농부의 마음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잦은 비에 고추는 벌래 때문에 썩고 떨어져 피해가 많아 걱정이다. 앞으로 소독하는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그나마 늦게 열리는 고추라도 수확을 할 수 있다.
날씨는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병해충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미리 소독하고 예방을 해야 하는데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기후로 인해 병해충이 자주 발생하고 농약도 약효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농사짓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기후에 영향을 덜 받는 시설하우스 농법이 발전하고 있지만 식물의 성장에는 자외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흐린 날씨가 지속되면 결실을 볼 수 없다.
다행히 장마가 며칠 소강상태라는 예보다.
우선 고추밭에 소독을 하고 들깨 심을 준비를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심어서 뿌리를 잡았는데 나는 좀 늦었다. 모종을 늦게 해서 어쩔 수 없다. 들깨 모종은 여유 있게 부어서 동네 다른 사람들이 모종을 심고 남는 것을 얻어서라도 심어야 한다. 들깨는 생존력이 뛰어나 무더위에도 물을 주고 심으면 잘 산다. 장마 기간이지만 농사는 쉴 틈도 없이 연달아 일은 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장마가 끝나면 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그때는 제초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농사는 계절에 맞는 날씨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무엇 하나라도 먹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병해충과 잡초와의 전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