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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늘 새로운 날을 기대하며 살자.

by 박언서

머리를 길렀다.

공직생활 34년 동안 많은 것을 자제하며 살았다. 다시 말하면 내면에 있는 욕망을 발산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래서 퇴직하고 첫 번째로 한 것이 바로 머리를 길러보는 것이었다. 물론 청소년기에도 한 번은 길러보았지만 지금처럼 길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처음에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 말을 하면 그제야 웃으면서 말을 한다.

몰라봤어.

그도 그럴 것이 퇴직하기 전에는 짧고 간결한 머리를 하고 다녔다. 옷도 깔끔하고 씸플 하게 입고 머리에 약간의 로션과 가르마를 정확하게 하고 다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당시 내가 담당하고 있던 업무에 따라 머리 모양이나 복장에 조금씩 변화를 주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180도 달라진 모습에 다들 놀란다.

놀라는 표정이 재미있다.

나는 평소에도 옷이나 머리 모양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다녔다. 솔직히 말하면 어제 입은 옷은 다음날 절대 입지 않고 머리 또한 조금만 길면 지저분해 바로 미용실로 가는 사람이었다. 좀 까탈스러운 그러나 깔끔한 스타일이다. 그날 일에 따라서 점퍼나 정장 등 옷이나 신발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집착은 아니었다.

지방(농촌지역)에서 근무하다 보면 때로는 논두렁 밭두렁이나 축사를 다녀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현장에 출장 가서 농사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정장을 입을 수 없어 나름 신경이 썼을 뿐이다. 때로 예정이 없었던 일이 생겨 급하게 현장을 가게 되면 최소한 웃옷과 신발은 바꿔서 나간다. 그래도 머리 모양은 늘 한결같아야 만나는 사람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퇴직 후 새로운 직장에 다닌다.

개인 회사에 출근을 하게 되니 복장이나 머리 모양에 대해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자유롭다. 그래서 첫 번째로 한 것이 바로 머리를 길러보는 것이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은 여러 가지로 고려해 볼 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게 했다. 그래서 계획도 없이 무작정 길러 보는 중이다.

마누라는 성화다.

그런데 사른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다. 멋있다거나 예술가 같다거나 머리가 길어도 잘 어울린다고 말해준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머리 모양을 이해하는 반응이다. 이런대도 마누라는 머리가 길다 보니 빠지는 머리 때문에 성화를 대서 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리고 마누라는 도대체 얼마나 기를 예정인지 물어보면 답변을 할 수 없다.

그냥 길러 보는 중이니까.

장날에 시장에 갔다. 꼬막이 제철이라 한 봉지 사려고 하니 사장님이 하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아줌마 싸게 줄 테니 한 봉지 사라는 것이다. 머리 모양을 보고 대뜸 아줌마로 보였나 보다. 얼마냐는 말에 놀라서 다시 처다 본다. 엊그제는 농협에 갔다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 직원을 만났다. 그런데 그분이 나를 몰라보는 것 같아서 인사를 했다. 그제야 웃으면서 알아차린다. 그러면서 첫마디가 역시 멋지단다. 현직에 있을 때나 퇴직 후에도 이런 모습이 정말 멋지고 보기 좋다고 말해주니 고맙다.

인생은 변화하는 재미가 있다.

공직이라는 굴래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며 살아온 인생에 변화를 주며, 내면에 있는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가며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이런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서 피해를 주거나 문제가 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갑자기 변화를 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하나하나 차근차근해 볼 예정이다. 그러다 아니다 싶으면 원래대로 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쉬운 일은 왜들 못하지?

인생을 멋지게 사는 방법은 다양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만족할 수 있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좋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며 굳이 스트레스받아가며 살 이유도 없다. 인생에서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정신과 마음 건강이다. 돈이 많아서 할 수 있고 반대로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무슨 일이든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도 나의 변화에 있어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은 소심함이나 두려움이 있어 그럴 것이다.

늘 즐거운 하루의 연속이고 싶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머리 모양이나 복장에 규제가 없다. 그리고 근무시간 또한 탄력적으로 할 수 있는 직장이라 마음도 편하고 좋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를 살아도 늘 새롭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게 살가가는 이유이며 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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