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들 키우는 일’이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할 것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 ‘아들 키우는 일’은 가장 힘든 일이다.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 그리고 백 번 양보해도 납득되지 않는 게임 과몰입… 철들면 알아서 잘하겠지 믿어주다가도 엄마의 조바심에 다시 재촉하는,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아이와 점점 감성적인 대화가 줄어드는 것을 느낀 순간,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산을 오르기로 했다.
어느 순간부터 움직임이 부쩍 줄어들고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묶여있는 6학년 큰 아들은 산에 가자는 말에 시큰둥하다. “그냥 막내만 델꾸 가면 안돼요?”
온갖 감언이설로 아이를 설득해 도시락을 싸들고 강아지까지 동반해서 집 가까운 아차산으로 무작정 나섰다. 등산로 입구, 아이는 아직도 탐탁치 않다. 그러더니 강아지와 동생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티격태격 오르는 길, 30분쯤 지났을까, 계속 힘들다고 불평하던 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넘어지는 동생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기도 하고, 강아지에게 물도 주고 봄 꽃 사진도 찍는다. 1시간 남짓 쉬엄쉬엄 올라가는 동안 아이의 표정은 한결 누그러진다. 하산길, 생각지도 않던 계곡을 만나 함께 발 담그고 앉아있다가 한마디 한다. “담에 또 와요~!”
한의학에서는 천인상응이라하여 사람은 자연과 교감하며 자연으로부터 기를 받아 생명을 유지한다고 보고 있다. 한의학의 원전인 황제내경(黃帝內徑)에서는 “인간의 오장, 12관절 모두가 천기와 통한다”라고 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자연환경과 연결되어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는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였고 그로 인해 예전에는 많지 않던 현대의 질병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는 과도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인한 아토피, ADHD 등의 질환이, 어른들은 고혈압, 당뇨, 비만 등의 생활습관병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생활습관병들, 그리고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들은 대부분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깨어져서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으로부터 충분한 기운을 받아서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치유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산, 그리고 산림은 한의학에서 자연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산과 숲은 물론 빛, 공기, 토양, 암석, 물, 바람, 습기, 꽃, 동식물 등 육기(六氣)와 만물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현대인에게 부족한 기운인 목(木)과 토(土)와 수(水), 즉 나무와 흙, 물이 가득하며 특히 초록의 생동하는 목(木)의 생명력이 가득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수목으로부터 나오는 기와 내 몸의 기를 서로 교류시킴으로 심신을 조화시키며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이 바로 산림치유이기도 하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산에 오르기 시작한지 6주째, 여전히 산에 가기까지 준비하는 시간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아이들이 조금씩 덜 불평하며 따라와준다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건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산행을 나 스스로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산이 주는 치유의 힘, 조금씩 메말랐던 아이와의 감성적인 대화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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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이 어렸을 때 한겨레 신문 베이비트리에 연재하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