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부모님, 아이 셋, 입주이모님까지 함께 살던 우리 집은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이었다. 퇴근길마다 이미 병원에서 지칠 만큼 지쳐 돌아온 나를 먼저 붙잡기 위해 아이들은 경쟁적으로 달려왔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속상했던 일, 자랑하고 싶은 순간들, 엄마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들. 잠깐 시선을 다른 데 두면 누군가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울어버리곤 했다. 그 시절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간다. 시부모님과 분가했고, 두 아이는 성인이 되어 품을 떠났고, 막내도 내일이면 스무 살 성인이 된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던 부모님 두 분은 나와 다른 시공간으로 떠나가셨다. 수많은 파고 속에서 무너졌다가 무너진 조각을 다시 이어 붙이며, 그래도 어떻게든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혼자 있는 시간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저녁,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나이 들면 이런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다. 자유일까, 외로움일까. 어쩌면 그 둘이 동시에 내 안에 공존할 수도 있겠구나.
올해도 놀라울만큼 갑자기 찾아온 12월 31일, 시간은 원래부터 이런 모양이었을까? 낮과 밤이 번갈아 오고, 계절이 순환하며, 달이 차고 기운다. 자연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흘러간다. 그 흐름에 선을 긋거나 경계를 만든 적 없다. 거기에 눈금을 새긴 것은 인간이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주기를 1년이라 부르고, 달의 주기에서 한 달을 만들었지만 자연이 주는 숫자는 인간의 계산으로는 명확하지 않았다. 365.2422일, 29.53일. 그래서 인간은 단위를 만들었다. 모자라는 만큼 윤일을 집어넣고, 계절이 어긋나지 않도록 윤달을 만들고, 흩어지는 흐름에 단위를 세워 길을 잃지 않으려 했다. 1주일이라는 숫자 또한 자연의 산물이 아니다. 일곱 개의 별,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에서 가져온 숫자일 뿐, 우주는 “7일이 적당하다”고 말해준 적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일하고 쉬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시간의 단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단위들은 우리가 덜 지치고 조각내서 살아가는 하루를, 그리고 1년이 가능하게 해주었다. 결국 시간은 인간이 "덜 지치고 살아가기 위해" 다듬어 만든 질서일 것이다. 난 그 질서가 좋다. 그 질서에는 설렘이 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욜일이 설레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를 맞이하는 것 또한 여전히 설렌다. 아침에 해가 떠서 하루가 시작되는게 설레듯이.
한의학에서는 인간을 소우주(小宇宙) 라고 부른다. 우주의 운행이 거대한 시계라면, 몸과 마음의 순환 또한 그와 맞물려 돌아가는 또 다른 시계다. 하늘에 사계절이 있다면, 우리 안에는 생장, 발전, 수렴, 저장의 주기가 흐른다. 자연의 시간이 밖에서 움직인다면, 정기와 기혈은 안에서 움직이며 삶을 버틴다. 외부의 시간과 내부의 시간이 서로 마주 보고 호흡한다. 시간은 달력 바깥에 있는 우주만이 아니라, 흩어지지 않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만든 장치인 것이다.
올해 내가 제일 잘한 일은 몇 년간 방치해 두었던 브런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조각나 있던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잊고 살던 것들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고, 불안함이 단단함으로 채워진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다시 생겨난다. 새해에는 내 안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이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조급하지 않은 속도로 살아보고 싶다.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잠시 멈춰 서도 괜찮다는 걸 인정하며. 너무 애쓰지 말고, 순리에 맞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브런치 작가님들, 올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각자의 속도대로, 각자의 시간 위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