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정규분포가 아니다

각자의 속도로 만들어지는 궤적

by 불멍

둘째 아이가 초등학생이었던 그 어느날, 아이에게 물었다. “넌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과학자!” 아이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더니, 곧바로 나에게 되물었다. “엄마는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다 컸고, 이미 뭐가 된 게 아닐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 말고. 이 다음에 되고 싶은 거.”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때의 나는, 더 이상 ‘되고 싶은 것’을 묻지 않아도 되는 단계에 와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이미 직업이 있고, 역할이 있고, 책임이 있으니 이제 남은 일은 그걸 잘 유지하며 완주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인생이 어느 시점 이후에는 더 이상 새로운 방향을 갖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천명을 지나는 지금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돌아보면 진료를 하고,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키우는 긴 여정 역시 나름의 재미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힘든 순간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이 전부 무의미했다면 이렇게 오래 지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재미와 의미는 생각보다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지금 이어가고 있는 매일 글쓰기 또한 다르지 않다. ‘꾸준함’은 늘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주었다.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아도, 걷다 보면 결국 어딘가에는 도착해 있었다.


이제는 젊을 때처럼 전력질주를 하지는 않는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주변 풍경도 바라보며 걷는다. 오솔길로 들어가 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잠시 쉬어가기도 힌다. 그러다 또 새로운 길이 나타나면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걸음을 옮겨보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고 설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젊은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정규분포 곡선에 비유한다. 어린 시절은 준비기, 20~40대에 정점을 찍고, 이후에는 완만한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이야기. 마치 50대가 넘어가면 내려갈 일만 남은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예측 가능한 그래프가 아니라, 매 순간 선택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지는 궤적에 가깝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미리 정해진 순서로 나타나지 않고, 같은 높이의 지점도 각자 다른 의미로 경험된다.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삶은 하나의 곡선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지형에 가까웠다. 중간중간 언덕도 있었고, 구릉도 있었고, 때로는 예기치 않은 낭떠러지가 나타나기도 했다. 평탄하던 길이 갑자기 가팔라지기도 했고, 힘겹게 오르던 길 끝에서 뜻밖의 전망이 열리기도 했다. 앞으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높은 언덕이 20대에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60대에 나타난다. 꼭 뾰족한 정점이 없어도 괜찮다. 완만한 구릉을 꾸준히 걸어가는 삶도 충분히 좋다. 시작이 평지였다고 끝까지 평지일 필요도 없고, 처음부터 가파르게 올랐다고 평생 산 위에만 머물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기에 삶은 오히려 지루하지 않다. 평균수명은 길어졌고, 아직 남은 삶은 많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만으로 앞으로의 궤적을 단정하기에는, 인생은 생각보다 여백이 넓다.


나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단위 속 숫자일 뿐, 나는 그저 우주의 흐름 속에서,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속도를 조절하기도 하며 즐겁게 유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올해도 다시 설렘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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