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는 2026
최근 몇 년 동안 이유를 정확히 짚기 어려운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생활반경이 무너지고, 근무하던 병원이 갑작스럽게 바뀌면서 익숙한 일상이 한순간에 낯선 공간으로 바뀌었다. 긴 시간 함께 일하던 직원들, 꾸준히 치료해오던 환자들, 매일 인사 나누던 상점 주인들, 정해진 동선 속에서 쌓아온 안정감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리셋’의 시기였다. 젊을 때의 변화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모험으로 포장되지만, 나이가 든 뒤의 이동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요구했다.
그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엄마가 세상을 떠났고, 건강하시던 아빠마저 다음 해에 뒤따라 가셨다. 남편은 급작스러운 직장 이동으로 주말부부가 되었고, 고등학생 아이를 홀로 챙기는 일상은 체력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체력이 무너지니 마음이 흔들렸고, 마음이 흔들리니 다시 몸이 따라 흔들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그 시기에는 오히려 밀어내고 싶은 위로처럼 들렸다. 지금 당장 아픈 사람에게 시간의 철학은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말은 사실이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시간은 결국 지나갔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조금씩 다시 일상을 회복했다.
병원에서 만나는 허리, 목 디스크 환자들을 볼 때마다 그 때를 떠올리곤 한다. MRI에서 디스크가 확진되면 환자들은 가장 먼저 묻는다. “완치가 가능한가요?”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완치란 ‘과거로의 완전한 회귀’가 아니라 ‘증상의 소멸’, 즉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통증을 낮추는 상태를 의미한다. 튀어나온 디스크가 드라마틱하게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통증의 강도를 낮추고 기능을 회복하여 삶을 다시 이어가게 하는 것. 치료 후에 관리를 지속하면 통증 없이 지낼 수 있지만, 일상의 관리가 무너지면 통증은 재발한다. 결국 함께 안고 살아가는 병이다.
삶도 그렇다. 부모님을 잃은 아픔은 시간이 지나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잊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뒤편으로 밀려날 뿐, 어떤 날은 불쑥 떠올라 속절없이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회복되지 않은 삶이라 할 수는 없다. 회복이란 ‘처음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작은 상처는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큰 상처는 자국을 남긴다. 어릴 적 넘어져 생긴 무릎의 흉터처럼, 나이 들수록 삶의 무릎에도 상처들이 남는다. 중요한 것은 흉터의 유무가 아니라, 그 흉터를 품은 채로 다시 걸어갈 수 있느냐일것이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아프지 않은 상태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안고도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마련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완전한 치유가 아니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 나이가 들수록 그 숙제는 늘어나지만, 동시에 그 숙제를 끌고 갈 근력 또한 조금씩 함께 자라나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2026년, 몸의 근력과 마음의 근력이 함께 자라 통증은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감정은 회복 가능한 지점으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