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을 관리하는 법, 어른을 연습하기

몸은 닳아가도, 마음은 굳지 않기를

by 불멍

한방재활의학과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단어 중 하나는 단연 “퇴행성”이다. 퇴행성 관절염, 퇴행성 척추질환, 퇴행성 변화. 영상 검사 결과를 설명하다 보면 이 단어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30–40대 환자들은 이 말을 처음 들을 때 대개 같은 반응을 보인다. “제가 벌써 퇴행성인가요?” 그 질문에는 놀람과 억울함,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 있다. 아직 젊다고 생각해왔던 몸이, 어느새 ‘퇴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변화의 범주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낯설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퇴행성 질환은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다. 퇴행성 변화란 병이라기보다 시간이 몸에 남긴 흔적에 가깝다.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변화이고, 척추관절의 퇴행성 변화는 연령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발견될 수 있다. 많이 쓰면 닳고, 오래 버티면 흔적이 남는다. 그것이 몸의 이치다. 그래서 나는 종종 환자분들께 이렇게 설명한다. “잘못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잘 다스리며 살아가라는 신호예요.” 퇴행성 변화는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식을 바꾸라는 신호에 가깝다. 무리하지 말고, 회복의 시간을 확보하고, 몸의 속도를 다시 조율하라는 신호다. 불현듯 그런 생각에 이른다. 몸의 퇴행성 변화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정신의 퇴행성 변화는 무엇일까.




30-40대의 나는 호기심도 의욕도 넘쳤다. 하루 진료를 마치고 나면 그대로 집으로 향하기보다, 저녁 시간을 쪼개 다양한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그중 지금까지도 가장 또렷이 남아 있는 두 과정이 있다. 하나는 아나운서 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계경영연구원의 경영자 과정이었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경영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강의를 좀 더 잘 전달하려면 말의 힘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경영의 마인드는 특정 직업군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순수한 지적 호기심의 발로였다. 하지만 몇개월씩 그곳에서 강의를 들으며 내가 진짜로 배운 것은, 교과서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었다. 아나운서 과정에서 물론 발음과 딕션, 전달력을 높이는 말하기 기술도 배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남은 깨달음은 좋은 대화는 말을 잘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경영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사례와 전략보다 내게 가장 강하게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내가 틀렸을 수 있다.” 이 문장은 생각보다 많은 전제를 흔든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 곧 정답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력과 성취가 판단의 기준이 되면서, 다른 의견은 ‘참고’가 아니라 ‘교정 대상’이 되기 쉽다.하지만,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아이에게도, 학생에게도, 후배에게도 분명 배울 부분은 있다. 경험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때로는 아직 경험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참신한 생각이 나온다. 젊은 친구들의 아이디어가 기존의 틀을 흔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신의 퇴행성 변화란 무엇일까. 나이가 들수록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타인의 말을 덜 듣게 되는 모습. 확신은 많아지는데 질문은 줄어들고, 설명은 늘어나지만 대화는 줄어드는 상태. 이 또한 자연스러운 변화일까, 아니면 관리되지 않은 퇴행일까. 노자는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고 말했다. 굳어간다는 것은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쉽게 부러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흔히 “나이가 들면 말은 줄이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 말이 정답이 아닐수는 있지만, 적어도 방향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확신이 커졌다는 신호일 수 있고, 지갑을 연다는 것은 삶이 내게 준 것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맹자는 “대인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판단을 잠시 미룰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가르치기보다 들어주고, 결론을 내리기보다 질문을 남기며, 자신의 경험을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참고자료로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


몸의 퇴행성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다스릴 수는 있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굳어가는 방향으로 늙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유연함을 연습해야 한다. 말을 줄이는 연습, 듣는 시간을 늘리는 연습, 그리고 삶이 내게 준 것을 조금씩 다시 내어놓는 연습.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퇴행을 부정하지 않되, 퇴행에 머물지 않는 어른. 시간의 흔적을 품은 채, 여전히 노력하고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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