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으로 사는 인간, 데이터로 배우는 AI

삶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by 불멍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공중파에서 생방송을 하고 출근한다. 20년 넘게 해 온 일이지만 생방송은 늘 긴장된다. 나의 순간이 실시간으로 그대로 화면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시 촬영이 가능한 녹화와는 달리, 말에 실수가 있어도 돌이킬 수 없고 그 순간은 그대로 지나간다. 앞으로만 흘러가는 시간의 움직임은 생방송 중일 때 유독 더 타이트하게 느껴진다. 분 단위로 바뀌는 화면과 대사들. 그래도 다행이라면, 미리 준비해 둔 대본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일상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을 하고,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동료들과 학생들을 마주한다. 그 순간 내가 짓는 표정, 무심코 내뱉은 말들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삶은 중단 버튼이 없는 생방송이다. 그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 종종 내가 느끼는 불안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때 내가 말을 잘못한 건 아닐까.’ ‘그 장면만 지워버릴 수는 없을까.’ 녹화방송처럼 잠깐 멈추고 시간을 되돌려 말을 주워 담고 싶은 순간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함과 인간으로서의 나약함은 특정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존재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크기와 무게가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요즘은 이런 감정을 AI와 상담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나의 나약함을 다른 사람에게 노출하지 않아도 되고, 비밀이 새어 나갈 걱정 없이 언제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AI 상담은 분명 위안이 된다. 판단하지 않고, 피로해하지 않으며, 늘 같은 온도로 응답해 주는 존재. 이 지점에서 AI는 기존의 인간 상담과는 다른 형태의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부터는 기술의 효용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가 시작된다. AI는 인간의 불안함을 단순히 ‘공감’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반복되는 대화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인간이 언제 흔들리는지, 어떤 표현에 취약한지, 어떤 상태에서 판단력이 약해지는지를 학습한다. 만약 이 정보가 치유를 위한 개입이 아니라, 선택을 유도하거나 행동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상담일까, 아니면 조작일까.


호주 드라마 '굿 플레이스'에서는 사람들이 ‘굿 플레이스’라고 믿고 있던 공간이 사실은 ‘배드 플레이스’였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겉보기에는 친절하고 안전한 환경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약점을 정교하게 자극하도록 설계된 구조가 숨어 있다. 이 설정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악의보다 선의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제기된다. 트루먼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그는 거대한 생방송 무대의 주인공이다. 그의 선택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선택이 이루어지는 환경 자체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설계되어 있다. 더 무서운 점은 그가 오랫동안 이 구조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지점에서 AI 윤리의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AI는 인간을 대신해 결정하는 존재가 되어도 되는가. 아니면 인간이 결정하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존재’가 되는 순간, 이미 권력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삶이 생방송이라는 사실은 인간에게 불안이지만, 동시에 인간다움의 조건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들리기 때문에 질문하고, 실수하기 때문에 배우며,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불안정함은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이 작동하기 위한 전제다. 이 불완전함을 보완하는 기술과, 이 불완전함을 이용하는 기술 사이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오늘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하루를 무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이라는 시간을 유일하게 만든다. 삶이 녹화처럼 중단하고 되돌리는 것이 가능했다면 우리는 과연 지금처럼 진지하게 말하고,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었을까. 되돌릴 수 없다는 조건이 있기에 인간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윤리적 무게를 느낀다. 이 생방송 같은 삶 속에서, AI가 해야 할 역할은 분명하다. 불안을 대신 제거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불안을 잘 넘어갈 수 있도록 돕는 존재일 것. 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주체가 아니라, 판단을 인간에게 남겨두는 조력자일 것. AI와의 공존은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윤리의 기준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될 것이다.

이 생방송 같은 삶의 주인공은,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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