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주도권
어릴 때 나는 모두와 잘 지내고 싶었다. 누군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친구에게 더 잘하려 애썼다. 미움을 받는 이유는 언제나 내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마음을 돌리지 못한 책임 역시 나에게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 친절해지려 노력했고, 더 참고, 더 스스로를 괴롭혔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나를 조금씩 깎아내리는 일이, 그때의 나에게는 당연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서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미움은 애초에 이유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모두와 잘 지내는 삶은 이상적일 수는 있어도 현실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워할 만한 무언가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이나 거리감, 때로는 미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미움이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유대교 교리에서 유래한 ‘2-7-1의 법칙’에 따르면,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야 두 명 정도, 나를 특별한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나에게 큰 관심조차 두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단순한 구분은 인간관계의 현실을 신기할 만큼 명확하게 잘 설명해준다. 우리가 애써 마음을 쓰고, 괜히 눈치를 보며, 의미를 부여하는 많은 시선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내가 무엇을 하든 크게 달라지지 않는 무관심에 가깝다. 문제는 그 한 명이다. 나를 좋아해주는 두 사람보다, 이유 없이 나를 불편해하는 한 사람에게 마음이 훨씬 크게 흔들린다는 점이다. 그 한 사람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평가 하나에 매달리다 보면 정작 나를 지지하고 이해해주는 관계는 쉽게 시야에서 밀려난다. 관계의 무게 중심이 그렇게 왜곡된다.
나를 좋아하는 소수에게 마음을 쓰는 것이, 나를 싫어하는 누군가를 설득하려 애쓰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데에도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공자는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려 애쓰지 말라고 했고, 맹자는 사람의 마음은 비교 속에서 쉽게 흐트러진다고 보았다. 모두에게 이해받으려는 태도는 결국 나의 기준과 중심을 외부의 시선에 맡기는 일이 된다. 그 순간부터 마음은 늘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다.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누가 나를 싫어하는지보다 그 사실에 내가 얼마나 흔들리는지가 더 중요하다. 모두를 설득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모든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도 없다. 열 명 중 두 명이 나를 좋아해준다면, 그 관계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다. 잘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삶이 아니라, 불필요한 상처로부터 내 마음을 지켜내는 삶일 것이다.
'중용(中庸)'에 “희노애락 미발지 위지중(喜怒哀樂 未發之 謂之中), 발이개중절 위지화(發而皆中節 謂之和)”라는 말이 있다.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그 감정들이 드러나되 모두 절도에 맞게 나타난 상태를 ‘화(和)’라 한다는 뜻이다. 그 중 희노애락 미발지 (喜怒哀樂 未發之)의 상태는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 감정이 생기기 직전의 평정, 외부의 말과 평가에 즉각 반응하기 전, 아주 짧지만 결정적인 순간이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마음을 건드리는 바로 그때, 곧바로 반응하지 않고 스스로를 한 번 붙잡는 시간. 내 마음의 주도권이 아직 나에게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순간을 자주 놓친다. 심지어 누군가의 말이 악의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은 먼저 튀어나와 상처받고, 억울해하고, 스스로를 소모시킨다. 중용(中庸)에서 말하듯,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킨 뒤에야 감정은 비로소 절도에 맞게 드러날 수 있고 관계를 상하게 하지 않으며 나 자신 또한 닳아 없어지지 않게 지킬 수 있다. 늘 좋은 평가를 받는 삶이 아니라, 평가의 세계 한가운데서도 감정이 먼저 나서지 않도록 그 짧은 ‘희노애락 미발지(喜怒哀樂 未發之)’의 순간을 지켜내어 '발이개중절 (發而皆中節)'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 아마도 그것이 이 복잡한 세상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평생 연습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