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도 안 되는 일 앞에서
길이 막히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애써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우리는 종종 그 자리에 머문다. 더 밀어붙일 힘도, 돌아설 결심도 나지 않은 채 멈춰 서서 상황을 바라본다. 언젠가는 길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붙잡은 채. 그 기대는 때로는 희망이 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묶어두는 끈이 되기도 한다. 뒤돌아서 다른 길을 찾는 일은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단순히 방향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과 선택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이 익숙했고, 그 길에서 쌓아온 시간만큼, 돌아서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노자는 물을 삶의 비유로 들었다. 물은 다투지 않고 앞서 나서지도 않지만, 막히면 머물고 더는 흐를 수 없을 때는 돌아간다. 억지로 벽을 뚫으려 하지 않고, 흐를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 움직임에는 조급함도, 패배도 없다. 다만 흘러갈 수 있는 쪽을 찾을 뿐이다. 막힌 벽 앞에 잠시 멈춰 서 있는 시간 또한 삶의 일부일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점검하며, 다음 걸음을 준비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끝까지 버티는 것이 언제나 옳은 선택은 아니다. 살다 보면 크게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풀리는 일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모든 힘을 쏟아붓고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일도 있다. 시간과 노력, 마음까지 다 쏟았는데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부족해서, 더 버텨보지 않아서, 아직 각오가 모자라서라고. 하지만, 모든 일이 노력에 비례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방향 자체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물이 산을 거슬러 오르지 않듯, 애초에 흐름이 허락하지 않는 자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포기했다’는 말이 여전히 패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가능성보다 미련을, 판단보다 인내를 선택한다.
기다리다 보면 우연히 길이 열리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상황을 바꾸고, 외부의 조건이 달라져 막혔던 문이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을 붙잡고 자신을 끝없이 소모하는 것이 늘 지혜로운 선택은 아니다.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가 아니다. 체념이 아니라 판단에 가깝다. 하지 않음이 아니라, 더 이상 힘을 쓰지 말아야 할 지점을 아는 것. 애써야 할 곳과 물러나야 할 곳을 구분하는 일이다. 때로는 걷다 보면 막다른 길보다 더 힘든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낭떠러지와 같은 지점이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기다린다고 해서 길이 생길 가능성도 없다. 이 앞에서는 선택지가 오히려 단순해진다. 뛰어내릴 것인가, 아니면 되돌아갈 것인가. 낭떠러지를 뛰어내리는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 실패의 위험이 크고,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오래 망설인다. 그래서 어떤 포기는 패배가 아니라 생존에 가깝다. 끝까지 붙들고 있는 용기보다, 내려놓고 방향을 바꾸는 용기가 더 필요한 순간도 있다. 돌아섰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걸을 수 있는 상태를 지켜냈다는 점일 것이다.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선택, 그것 역시 용기다.
누구나 잘하고 싶고, 잘되고 싶다. 세상 그 누구도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스스로를 잉여라고 느끼며 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잘되지 않는 일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 늘 성실함의 증거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일은 놓아야 다른 일이 시작된다. 포기 이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길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더라도, 멈춰 서 있기보다 다시 걷는 쪽을 선택하는 일이 아닐까. 애써야 할 곳에서 애쓰고, 그렇지 않은 자리에서는 물처럼 물러나는 것. 그 길이 어디든,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은 그 선택을, 나는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