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는 사람의 여백 연습

나의 기질을 데리고 살아가기

by 불멍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MBTI로 옮겨가곤 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서로의 MBTI를 묻는 일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상대를 빨리 이해하고, 관계의 결을 가늠해보려는 하나의 방식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혈액형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면, 이제는 MBTI가 그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돌아보면 내 MBTI는 조금씩 변해왔다. 분명 I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30년 가까운 사회생활을 거치며 어느새 E의 비중이 커졌다. 감정에 기대어 판단하던 F도, 지금은 T 쪽으로 많이 이동해 있다. 다만 N과 J는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네 가지 기둥 중에서도 나를 가장 오래 붙들어온 것은 J였다.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계획이 있어야 비로소 안정되는 성향.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가능한 여러 갈래의 상황을 그려보지 않으면 어딘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아이 셋은 모두 P 성향이다. 여행을 준비할 때면 나는 일정표를 만들고, 아이들은 계획 없이 그냥 떠나길 원한다. 처음에는 그 무계획이 못마땅해 잔소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계획이 없다고 일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계획이 틀어질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조급해지는 쪽은 늘 나였다. 아이들은 계획이 바뀌는 일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고, 예기치 않게 등장한 일정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중요하게 붙들고 있던 것이 ‘계획 그 자체’라기보다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사상체질은 타고나는 것이며, 살면서 바뀌지 않는다. 진료실에서 “체질 좀 바꿔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타고난 체질은 바뀌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하면 환자분들이 잠시 멈칫한다. 그 반응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조심스러워진다. 타고난 체질에 따라 누군가는 자주 체하고 소화가 안 되며, 누군가는 호흡기 질환에 취약하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에 오래 마음을 쓰고, 누군가는 말을 던지고도 쉽게 잊어버린다. 더 좋은 체질이나 나쁜 체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체질은 몸과 마음을 관통하는 고유한 장단점을 함께 지닌다. 사상의학이 철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몸만이 아니라 심성, 즉 마음을 함께 바라보기 때문이다. 반면 타고난 체질과 달리 MBTI가 변하는 이유는, 그 바탕 위에 삶의 역할과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18년을 보냈다. 사회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시간, 관계와 역할이 모두 끊긴 자리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을지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그 시간 속에서 그는 '목민심서'를 쓰고, '경세유표'를 정리하고, '흠흠신서'를 완성했다. 유배라는 삶은 분명 버겁고 고독한 시간이었을 텐데, 그는 왜 그토록 많은 글을 썼을까. 글을 쓰며 평정을 얻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붙들고 있었을까. 이런 태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반복되어 온 사유이기도 하다. 로마시대 철학자였던 '에픽테토스' 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태도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또한 전쟁과 역병 속에서 '명상록'을 쓰며, 흔들리는 현실을 바꾸기보다 스스로의 생각을 정돈하는 방식으로 삶을 버텼다. 절망을 부정하지 않되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 일, 감정을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휘둘리지 않는 일. 오래된 철학자들이 반복해온 삶의 태도는,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성향과 기질을 이해하고 다루려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은 마음을 단번에 바꿔주지는 않는다. 다만 생각이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게 해준다. 머릿속에서 겹겹이 쌓이던 생각들이 문장이 되는 순간, 그것들은 막연한 압박이 아니라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은 사람을 압도하지만, 문장 속에 놓인 감정은 생각의 재료가 된다. 잘한 일뿐 아니라 어긋난 일과 망설였던 순간까지 함께 적어 내려가다 보면, 삶을 하나의 결과로만 재단하지 않게 된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그려보고, 혹시 모를 상황을 미리 가늠해본다. 덕분에 늘 남들보다 더 많이 준비하고 연습해왔다. 그 성향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계획 그 자체보다 계획이 어그러졌을 때의 태도가 삶의 방향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예전의 나는 그 어긋남을 곧바로 평가로 연결했고, 그 평가는 곧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계획은 나를 지키기 위한 도구일 뿐, 나를 재단하는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삶은 애초에 변수로 가득 차 있고, '모든 것을 미리 정해둘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들의 P적인 태도를 보며 배운 것 또한 많다. 준비하지 않았기에 문제되는 삶보다, 준비했기에 더 크게 흔들리는 삶도 있다는 것. 여백이 있어야 비로소 삶이 숨을 쉰다는 사실이다.


문장 앞에 앉아 있으면, 당장 해결해야 할 것처럼 보이던 문제들도 잠시 속도를 늦춘다. 해결책을 찾기보다, 왜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지, 왜 마음을 붙잡고 있었는지를 먼저 묻게 된다. 그렇게 생각을 맥락 속에 놓아두면, 그것은 더 이상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상태가 된다. 생각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그 거리만큼 선택의 여지도 생긴다. 여전히 나는 J의 기질을 지니고 살아간다.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대비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세상을 건너온 사람이다. 하지만 그 기질을 고쳐야 할 결함으로 여기기보다는, 조율하며 함께 가야 할 성향으로 바라보려 한다. 필요할 때는 계획하고, 필요할 때는 내려놓는 법.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지금의 나에게는 삶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MBTI도, 체질도, 삶의 조건도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성향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 성향을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느냐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붙들어 주는 방식 하나쯤은 필요하다. 나에게 그것은 글이었다. 흔들림에서 시작되었지만, 덕분에 중심을 다시 세우는 법을 배우게 된 일. 오늘도 나는 나의 기질과 함께, 조금 더 편안한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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