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몫으로 살아가기
살다 보면 가끔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을 만난다.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일이 풀리고, 모든 것이 잘 흘러가던 시기 뒤에는 기다렸다는 듯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 마치 누군가가 내 삶의 방향을 조정하고 있는 것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양극즉음(陽極則陰), 음극즉양(陰極則陽). 양(陽)이 극에 달하면 다시 음(陰)으로 돌아서고, 음(陰)이 극에 달하면 다시 양(陽)으로 기운다. 기운은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넘치면 돌아오고, 막히면 방향을 바꾼다. 질병도, 마음도, 삶도 큰 맥락에서의 변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무작위의 집합이 아니라, 놀랄 만큼 정교하게 조율된 체계라고 설명한다. 물리 상수 하나만 달라져도 별이 만들어지지 않고,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조건이 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숨 쉬는 이 세계는, 수많은 미세한 균형 위에 겨우 유지되고 있는 공간일 것이다. 그 정교함 앞에서 인간의 삶 역시 완전히 우연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어떤 원리. 누가 설계한 것도 아닌데, 신기할 만큼 질서를 유지하는 세상. 아담 스미스는 시장을 움직이는 힘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불렀지만, 삶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드러나지 않는 규칙,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흐름이 있다.
살면서 예기치 않게 만나는,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상황과 반복되는 좌절, 이유 없이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 그때는 이 모든 질서가 불공평하게만 보인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간이 오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그 순간을 다시 바라보면 불현듯 깨닫고는 한다. 그 시기 이후에 반드시 다른 삶의 순긴들이 열려 있었다는 사실을. 좋은 만남, 뜻밖의 기회 같은 것들.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늘 같은 형태의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삶은 마치 모든 흐름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사람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한 번 크게 흔들린 뒤에는, 반드시 다시 어떻게든 삶의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움직인다.
여러 사람의 삶을 함께 놓고 바라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비어 있는 자리가 있다. 성취가 큰 사람은 관계가 메말라 있을 수 있고, 부유한 사람에게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이 있으며, 사랑받는 사람에게도 자기 확신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무엇 하나 넘치면, 다른 무엇은 모자란 채로 남아 있다. 노자는 “가득 차면 기울고, 너무 날카로우면 부러진다”고 했다. 넘침은 오래 유지되지 않고, 균형은 스스로를 회복한다. 장자는 인간이 바꿀 수 없는 몫을 억지로 움켜쥐려 할수록, 오히려 마음만 소모된다고 보았다. 삶에는 애써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있고, 그 흐름 안에서 각자 감당할 만큼의 몫이 주어진다는 생각. 우주의 존재를 알지 못하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질서를 알았던 것일까. 과학도 없고 데이터도 없던 시절에, 그들은 삶이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을 오래 바라보는 방식으로, 계절의 반복과 흥망성쇠를 몸으로 겪으며 배웠던 것일까. 그래서 그것을 하늘의 이치라 부르고, 음(陰)과 양(陽)의 흐름이라 이름 붙였던 것일까.
요즘처럼 SNS로 타인의 삶을 쉽게 들여다보는 시대에는, 타인의 한 장면만 보고 자기 삶의 가장 힘든 순간과 견주기 쉽다. 남의 가장 빛나는 부분과, 자기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나란히 놓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그러니 공평하지 않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면, 삶은 누구에게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일 때문에 괴롭고, 누군가는 관계 때문에 지치며, 누군가는 미래 때문에 잠을 설친다. 문제의 모양만 다를 뿐, 각자가 짊어진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부러워하던 누군가도, 밤이 되면 자기 몫의 불안을 안고 잠들지 못하는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중 가장 감사한 몫은, 마음이 편한 상태일 것이다. 성취도, 부도, 관계도 어느 정도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지만, 마음의 평온은 그렇지 않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수록 오히려 이 몫이 가장 부족한 경우를 자주 본다. 겉으로는 성공했지만, 속으로는 쉬지 못하고 늘 불안하며, 스스로를 놓아주지 못한 채 살아간다. 전부 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굳이 남의 몫까지 욕심낼 이유도 사라진다. 대신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조금 더 바라보게 된다.
삶의 공정함은, 모두에게 같은 것을 주는 데 있지 않다. 각자에게 다른 몫을 주고, 그 몫을 잘 견디며 살아가게 하는 데 있다.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를 부러워하고, 불완전하기에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보이지 않는 질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끝까지 살아가게 해준다는 믿음. 전부 다 가지지 못해도, 결국은 자기 몫만큼은 살아낼 수 있도록 세상이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 남의 몫을 부러워하기보다, 내 몫의 하루를 조금 더 신뢰해 보는 마음.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번 생을 조금 덜 흔들리며 잘 건너가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