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라는 이름의 본능

왜 사람은 자리에 집착하는가

by 불멍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는 침팬지 집단의 장기간 관찰을 통해, 정치가 인간만의 문화가 아니라 진화적 기원을 지닌 사회적 본능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권력, 연합, 평판, 기만, 화해와 같은 우리가 인간 사회의 정치라고 부르는 거의 모든 장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유인원 사회에서도 반복된다. 정치는 제도 이전의 현상이며, 권력은 문화 이전의 관계 기술이라는 관점. 인간의 정치 활동은, 아주 오래된 생존 전략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권력욕과 지배욕이 성향이 아니라 본능에 가깝게 설명된다는 점이다. 서열이 오를수록 자원과 기회가 늘어나고, 권력은 생존과 번식에 직결되는 자원이 된다. 그래서 지배하려는 욕망은 야망이 아니라 오래된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욕심이라고 부르는 마음,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충동, 자리를 차지하고 지키려는 집착. 이 모든 것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침팬지 사회에서 1인자가 되는 데 중요한 것은 힘보다 연합이다. 누구와 손을 잡느냐, 누가 어느 순간 편을 드느냐가 권력을 결정한다. 권력은 개인의 힘이 아니라, 관계의 산물이다. 많은 권력 교체는 정면 승부가 아니라 2인자의 선택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권력이 무너지는 순간은 대개 한 번의 패배가 아니라, 서서히 중심에서 밀려나는 과정이다. 연합이 흔들리고, 가장 가까웠던 동맹이 등을 돌린다. 흥미롭게도 오래 권력을 유지한 1인자일수록 퇴장을 준비하는 방식이 달랐다. 앞에 나서지 않고, 자리를 조금씩 내준다. 힘으로 버티지 않고, 관계로 물러난다. 반대로 힘으로만 군림하던 1인자는 약해지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지고, 무리 안에서도 오래 남지 못한다.


인간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권력은 대부분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구와 손을 잡는지, 누구의 신뢰를 얻는지, 누가 어느 순간 편을 바꾸는지가 자리를 결정한다. 내려오는 순간이 되면 발언권이 줄고, 영향력이 이동하고,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비켜난다. 어느 날,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더 이상 같은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드러나는 것이 사람마다 다른 권력에 대한 태도다. 어떤 사람들은 자리를 곧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다. 직함이 사라지면 이름도 희미해지고, 권한이 줄어들면 존재감도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리를 잃는 일은 역할의 이동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소멸처럼 느낀다. 일종의 탈영실정(脫營失精)*이다. 이들에게 권력은 단순한 영향력이 아니다. 정체성이며, 자존감이며, 자기 증명의 근거다. 그래서 끝까지 자리를 붙든다. 결정권이 없어져도 개입을 멈추지 못하고, 변화를 위협처럼 받아들이고, 후배의 성장을 불안해한다. 자리를 내려놓는 순간 자기 자신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 사회가 보여주듯, 그 방식은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한다. 힘으로 버틴 자리는 힘이 약해지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진다. 연합이 없고, 신뢰가 없고, 지켜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는 사람들도 있다. 권한을 나누고, 결정을 맡기고, 앞에 나서기보다 한 발 물러선다. 자리는 내려놓지만 관계는 놓지 않는다. 직함은 사라져도 신뢰는 남고, 역할은 바뀌어도 존중은 남는다. 결국 조직에서 진짜 강한 사람은 자리를 오래 지킨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떠난 뒤에도 사람들이 찾는 사람이 아닐까. 자리에 기대지 않아도 영향력을 갖고 있고, 권한이 없어도 신뢰로 남는 사람. 노자는 “공을 이루고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했다. 공을 이루는 것보다, 그 뒤에 물러날 줄 아는 일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장자 또한 집착을 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고 보았고 알랭은 떠날 줄 아는 것이 곧 살아갈 줄 아는 일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권력욕과 지배욕, 자리에 대한 집착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남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익혀온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본능 그대로 사는 것이 곧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는, 인간에게는 그 본능을 바라보고 성찰할 수 있는 철학적인 사고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끝까지 자리를 붙든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내려놓고도 자기 이름으로 남을 수 있었던 사람이 아닐까.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늦게까지 사람으로 기억되었는가를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으려면, 앞으로 조직에서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탈영실정(脫營失精): 부명예를 누리다가 갑자기 그것들을 잃게 되어 심한 우울증상과 함께 정신이 멍해지고 식욕이 없어지고 몸이 마르고 멘붕 상태에 빠지는 증상을 칭하는 한의학 용어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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