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不安)에서 안심(安心)으로
안심(安心),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이 두 글자는, 살아보니 가장 어려운 상태를 일컫는 말처럼 느껴진다. 안심(不安)하고 내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삶은 늘 선택과 갈등 사이에서 흔들리고, 마음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요동친다. 불안(不安)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꾼 채 돌아온다. 어쩌면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평온이 아니라, 그 흔들림 자체인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흔들리지 않았던 때도, 쉬웠던 날도 거의 없었지만 큰 탈 없이 여기까지 온 건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점심을 먹고 대학 캠퍼스를 한 바퀴 천천히 걷는다. 가지 끝에 솜털이 송송 올라온 목련 봉우리가, 마치 입춘을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유난히 더웠던 작년 여름, 이 더위는 언제쯤 끝날까 하며 기다리던 시간들은 이미 뒤로 물러났다. 계절은 언제나 나보다 빠르다. 내가 머릿속에서 계산하는 시간보다 자연이 기억하는 계절은 늘 먼저 온다. 어느새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 같은 공간에서 다시 봄을 기다리고 있다.
같은 공간에 20대와 50대의 내가 함께 서 있다. 영화의 한 클립처럼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모든 순간들, 해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던 산수유 나무와 목련나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공간은 변하지 않았고, 계절은 제 몫을 다하며 돌아왔다. 변하지 않는 듯한 것들 속에서도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정지해 있는 것 같은 풍경 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은 남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엄마가 되었고 세상에 없었던 세 아이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한 순간 위에 또 다른 순간이 포개지며 시간이 층을 이루듯 쌓였다. 이 장소에서 보냈던 수많은 순간들이, 내 안에 켜켜이 남아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간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시간 속으로 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지만, 정작 우리는 시간의 끝을 실감하지 못한 채 현재를 살아간다. 마치 언젠가 죽음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오늘은 아닐 것이라 믿듯이. 그래서 젊었을 때의 시간은 늘 무한한 직선처럼 느껴졌고, 늦은 밤의 피로조차 영원히 회복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직선은 파동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멈춘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변화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불교에서는 집착이 고통을 만든다고 했고, 장자는 모든 것은 이미 흐름 속에 있다고 말했다. 안심(安心)이란 어쩌면 흔들림을 없애는 상태가 아니라, 그 흔들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불안(不安)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중심을 잡는 것, 파동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 누구나 매일 수없이 많은 욕망과 욕심, 마음을 오가는 불안(不安)을 안은 채 그 안에서 안심(安心)을 찾아 살아간다.
곧 다시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 목련 봉우리를 바라보며, 비로소 마음의 속도를 조금 늦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안심(安心)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