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게 보이지만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
그렇게 호주에서 일한 6개월을 나의 첫차에 다 쏟고 공부를 시작했다. 유난히도 덥던 7월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무가내로 아무 책이나 보고, 아무 말이나 들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쏟아부은 노력에 비해 늘 점수가 높지 않은 편이었다. 이를 늘 내가 시골에서 크고 자라서, 학원을 다니지 않아 효율적이지 못한 공부를 해서라고 여겼던 거 같다. 고등학생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야간 자율학습에서 도망 다녔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흔한 야간 자율학습 한번 제치지 못하고, 늘 책상에 붙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리 높은 점수는 얻지 못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사범대학에 입학해서, 이곳저곳을 방황하다 다시 공부를 하려니, 이미 합격한 친구들과 이제 곧 합격을 앞둔 친구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공부를 마친 저녁에는 새로 사귄 선배 및 후배들과의 술자리도 잦게 되었고, 공부를 하는데 돈이 그렇게 필요할 줄은 몰랐다.
하루에 2시간씩 학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급이 3만 원이어서, 나름 괜찮은 알바였고, 나머지 시간을 잘 활용해서 공부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또 현장에 나가기에 앞서,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차를 산건 정말 후회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약 4개월간 공부를 하고 치른 첫 시험. 문제를 보면서, "어? 내가 봤던 건데? 쉬운데?"라는 생각을 하고 답을 적어나갔다. 그 답이 정답인지, 오답 인지도 모른 체, 결과는 당연히 과락. 당연했다. 그렇게 공부하고서 합격을 바란 내가 바보지. 며칠 뒤 바로 마음을 추슬렀다. 보통 3월에 다들 공부를 시작하지만, 나는 같이 떨어진 동료들과 스터디를 시작했다.
공부할 곳을 찾지 못해, 동료의 인맥을 통해 아침마다 스터디를 했고, "아, 이렇게 공부하는 거구나." 싶었다.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고,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바람이 늘 나를 설레게해 조금은 힘들었지만, 다시 반복적인 일상을 시작했다. 아침 7시에 도서관에 출석해서 공부를 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학교로 출근했다. 퇴근 후에는 정신상태를 바로잡고 공부에 대한 각성을 하기위해 수영장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수영을 하고,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는 다시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쉬었다.
"11월까지의 긴 레이스다. 초반에 무리하면 안 된다. 지금 하는 대로 쭉 가야 한다. 지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하며 지치지 않기 위해 종종 운동과 음주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했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나름"이라는 게 문제가 된 거 같다. 늘 "나름"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결과는 또 "과락"
합격자 발표가 난 날 친한 선배와 술을 마셨다. 저녁에 결과를 묻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전화는 눈물샘을 자극했다. "미안해. 엄마 떨어졌어." 하며, 아이처럼 울었다. 속이 시원할 정도로, 그때 엄마 아빠의 대처는 나를 또 자극시켰다. "괜찮아. 네가 1~2년 하려고 그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다시 준비하자." 엄마 아빠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기 위해서라도 다시 달려야지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몸과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여행이나 휴식을 취했지만, 나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돈도 없었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보다 고생하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위해 매달 방값까지 지불해주시고, 가끔 맛있는 반찬을 준비해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다시 3년째 공부가 시작되고, 나는 똑같은 일상을 또 똑같이 반복했다. '일'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주변인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공부했다. 3번째 "과락"
하루 10시간, 지치지 않고, 공부해도 과락이라니, 정녕 내 길이 아닌 듯했다. 합격자 발표날 부모님과 통화하며 또 서럽게 울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나는 기술을 배우리라 생각했다. 여전히 똑같은 일상이었지만, 그 안에서 조금의 변화는 있었다. 학교일을 7월에 끝내고, 8월부터 오로지 공부만 했다. 오랜 공부로 장이 좋지 않아, 자주 화장실에 있었지만, 그 시간조차 암기하는데 썼고, 발 디딜 틈도 없는 고시원 방안에 모든 과목을 요약해서 도배를 했다. 선후배와의 술자리도 거의 하지 않았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글로 쓰고, 말로 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가지고 공부했다. 그 시절 인터넷 강의에서 강사님이 하신 말이 뇌리에 꽂혔다. "인생을 거세요." 생각해보니 내가 인생을 걸만큼의 노력은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얼핏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합격한 것과 합격하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기 때문에, 인생을 걸라는 강사의 말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여기서 내가 합격하면 교사가 되지만, 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인생은 또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그 시절 생각했던 건, 이번에 또 떨어지면 "기술을 배워야지"라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같이 일을 하자는 제안까지 받았기 때문에. 인생을 걸어 공부했고, 그 결과 시험은 너무 쉬웠다. 시험장을 나오는 순간 이전의 3번의 시험 때와는 완전히 달랐고, 결국엔 합격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지역에 배정을 받았다.
그 후로부터 나는 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힘이 들지도 않았고, 무엇을 하든 너무 기쁜 마음으로 임했다. 물론 1~2번 만에 합격하는 사람도 많고,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4년간 너무도 간절히 바라 왔던 순간이 실제로 펼쳐졌으니, 매일 아침 출근하며 "이게 꿈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몇 년은 한 거 같다.
물론 요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벌써 5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내가 그 강사의 말처럼 인생을 걸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고.
"인생을 건다."라는 말. 쉽지 않지만, 쉬운 것. 대단해 보이지만, 결코 대단하지 않은 것. 결국 나를 위한 것. 오늘도 건강을 생각하며 러닝을 한 후 치킨을 시킨다. 치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