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虛)의 노래

연작 아닌 쉬어가는 글

by 생각소년 김영안

네 살 때였던가, 다섯 살 때였던가

축등에 올라 깜짝 놀랐다.

할미바위 등고선 너머


또, 산


그때까지 나는

눈에 보이는 등고선 안이

내가 사는 세상의 전부인지 알고 있었다.


학교에 처음 가던 날,

학교 아래쪽에서도 애들이 오는 걸 보고

또, 놀랐다.

학교가 있는 곳이

내가 사는 땅의 끝인지 알고 있었는데.


사학년 때였던가 오학년 때였던가,

해 다음의 수가 더 있다는 것, 믿기 어려웠다.

자 양 구 간 정 재 극.


또, 언젠가 놀랐다.

해 말고 해가 또 있다는 것.


그때까지

별은 그냥 별인 줄 알았다.

그 총총한 것들이 다 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해를 돌고 있는 것들은 한낱 점.


해는 먼 곳에서 볼 때 반짝 예뻤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불덩어리.

가까이 와서 보니 더 좋은 별은 이곳뿐이었다.


전깃불이 들어오던 날,

그것이 없앤 등잔불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마을에서 이제, 달이 있는 밤과 달이 없는 밤의 구분이 없어졌다.


나는 아홉 살 때 달을 통째로 빼앗겼다.

내가

암스트롱이었다면

성조기 말고 달맞이꽃을 심어 놓고 왔을 터.


별빛은 백억 년 달려왔어도 숨차지 않다.

백억 년 그리웠던 나에게 와서 잠들었으니 그렇다.

나도 너에게 가서 부서질 것이다.


할미바위 너머보다 멀지만 가까운 곳

해보다 더 밝아서 진정으로 까만 곳

극보다 더 많아서 아무것도 없는 곳.


내 폰

바탕화면은 점 하나다.


목성에서 본 지구

칼 세이건이 붙인 이름


'창백한 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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