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얼마나 좋은가 맨날 개짓하니까
암반머리 밭 끝에 시집와 애를 밴 채 죽은 탄현댁 가묘가 있었다. 겨울에 죽은 송장은 땅이 풀릴 때까지 지상에 놓고 볏짚을 둘러놓았으니 가묘라기보다는 임묘(臨墓)다. 새댁이었던 엄마도 이곳을 지날 때 머리가 섰다고 했다.
탄현댁은 왜 벌역에서 이곳 산중으로 시집을 왔을까?
쉬쉬하는 바에 의하면 그가 이곳으로 시집온 건 재혼인데 남편 성무학만 모르는 듯했다. 고양군 송포면으로 시집간 그가 광에서 옆집 새끼랑 분탕 하다 들켜 귀양처럼 은신처럼 온 곳이 여기라는 것이다.
뱃속 아이가 성무학의 것이 아니리라는 것도 쉬쉬거리다. 온 지 여섯 달인데 배가 너무 많이 불렀기 때문이다. 이건 원래 없었던 비밀인데 성구 이버지가 염을 하고 나와 퍼트린 쉬쉬다.
나는 동네의 비화를 여럿 안다. 영태 아버지가 뱀 잡으러 갔다가 대훈이 엄마를 잡고 온 것도 나만 아는 비밀이다. 샛골 앞뒷집 아이가 닮은 내력도 나만 아는 비밀이다.
내가 석현리에서 제일 먼저 자가용을 샀는데 차자랑 겸 효도 겸 엄마 친구들을 태우고 먼 길을 다녔었다. 엄마가 친구들과 나눴던 임금님 귀가 온전히 내 것이 됐는데 이런 비밀을 혼자 먹고 새겨야 하는 것도 좋은 고통이었다.
지금은 폰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폰도 없고 차도 없던 시대에는 울타리 너머로 뻐꾹 거려 개짓하는 것 외 방법이 없었다.
개는 얼마나 좋은가 맨날 개짓하니까.
하루살이가 단 하루 살고 죽어도 멸종하지 않는 건 그만큼 부지런히 연애하기 때문이다.
개가 그렇게 잡아먹어도 멸종하지 않는 건 맨날 개짓하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곳이 중요하다. 벌역에서는 머슴으로 살망정 쌀밥 먹지만 산골에선 부자로 살아도 조밥 먹기에 바쁘다.
아이티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이티에서 살아야 한다.
레소토에서 태어난 자는 레소토에서 죽어야 한다.
벌역에서 태어나 이곳 산중으로 시집와 죽은 탄현댁은 개짓하다가 만난 개 같은 경우의 수다.
국경을 깨지 않고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다.
진보는 깰 때만 가능하다.
깨지 않으면 화석이다.
진화가 그랬다.
깨지 못한 자벌레는 천만년 전의 자벌레 그대로다.
사피엔스가 깰 것은 고정관념이다.
적은 강고하다.
이렇다니까 이렇다, 저렇다니까 저렇다,
신문에도 나왔다, 방송에도 나왔다.
우리의 뇌에는 아무런 검증 과정 없이 고정화된 관념이 100중 99다.
코페르니쿠스는 99의 고정관념을 98로 줄인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은 100중 1의 생각을 2로 확장한 사람이다.
생각은 돈이다.
생각은 시간이고 공간이다.
비물질인 것이면서 물질인 것을 지배한다.
생각의 주식은 ‘왜냐’는 의문이고
생각의 주적은 ‘카더라’라는 고정관념이다.
인간이 만든 물건 중 가장 잔인한 게 국경이다.
“너는 오지 마”
국경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바람도 막아야 한다.
기러기도 막아야 한다.
두더지도 막아야 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 중 가장
비현실적이며
비과학적이며
부자유며
거짓이며
기만인 제도가 있다.
누구나의 것이지만
누구도 말 못 하는 그것,
가묘를 헐던 날
보였다.
탄현댁 내쫓은 시아버지 콧수염,
그의 사랑방 댓돌에 놓여 있던
코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