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안의 생각장난 -8-

뇌물

by 생각소년 김영안

비가 새서 방 가운데 고랑을 파 빼냈다.

우리는 고랑 이쪽 윗목에서 잤다.

엄마는 아버지와 노상 싸웠지만 잘 때는 꼭 고랑 저쪽 아버지 옆에서 잤다. 얄몄다.


이불 하나에 일곱이 들어갔다.

미군이 덮었던 담요인데 따뜻했다.

이불을 뺏기고 추울 땐 달빛을 덮었다.

창호지 문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흙벽 구멍으로 쥐가 들어왔다.

방바닥 틈새로 연기가 들어왔다.

들어온 것들은 모두 가족이 되었다.


그 자리에 모텔이 들어섰다.

방이 모자라 대기실이 있었으니

요즘 식당들 웨이팅이 마케팅이라지만

S공장에선 이미 삼십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요양원이 됐다.

한때 둘이 와 교성 지르던 방에서

지금 혼자 와 비명 지르고 있다.


바깥채에 외양간이 있었다.

여물 먹는 것이 하도 맛있게 보여

그때부터 나의 꿈은 소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볏짚 썰고 콩깍지 섞어 푹푹 끓인, 그 김 나는 소죽 사각사각 먹는 소가 배고파 죽겠는 내게 어찌 부러움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인간은 소를 잡아먹은 죄만으로 천당 가긴 글렀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평생 일 시키고 늙어 쇠약해지면 잡아먹었다고 슬퍼했다.

등심 안심 사골뼈 발리고 발라 킥킥대며 먹었다고 격분했다.

옛날엔 옥수수대도 주고 파랭이풀도 줬는데 요즘은 볏짚만 준다고 성토했다.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석현리 372번지는

내가 아홉 살 때까지 살던 집이면서 1568평의 밭이다.

그 밭에서 엄마 혼자 보리를 베고 있었다.

내가 보릿단을 끙끙 날랐는데 이삭이 자꾸 눈을 찔렀지만

"우리 영안이 힘세다. 우리 영안이 장사다"

이 말 듣기 위해 또 날랐다.


그날 저녁, 식구들 다 호박풀떼기 줬는데

나만 감췄던 보리밥 한 주발 줬다.

내 평생, 딱 한 번의 뇌물이었고 대가였다.


예나 지금이나 땅값은 만만치 않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이 땅을 38만 원에 팔았다.

최고액권 100원짜리 지폐 38단이었으니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일곱 새끼들 무엇을 먹여 기르려고 이 땅을 팔았는지 나는 아직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구멍가게,

CU나 세븐일레븐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옛날로 치면 구멍가게다.

이다음에 애들이 물을 것이다.

구멍가게에서는 어떤 구멍들을 팔았나요?


목구멍, 콧구멍, 귓구멍, 똥구멍

그러나 이것들은 구멍가게에 없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책에는 있되 구멍가게엔 없다.

정작 소중한 것들은 값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구멍을 좋아하는 남자였지만

돈 주고 사서 쓴 기억은 없다.


구멍은 안과 밖이 통하는 곳이라서 좋다.

이쪽과 저쪽이 오갈 수 있는 곳이라서 좋다.

개구멍, 바람구멍이 그렇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그렇다.


천국은 꽃이 있고 연못이 있고 가무가 있는 곳이 아니라 자식들 목구멍에 쌀 들어가는 거 볼 때라고 했다.

땅 팔고 애들 목구멍에 쌀 넣을 구멍이 없자 아버지도 구멍가게를 냈다.

기차를 타고 의정부 가서 물건을 떼어 왔는데 장흥 간이역에서 능고개 넘을 땐 내려서 밀었다. 여럿이 밀면 밀렸다.


백석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가 유명했지만 돌고개 김삼만네 밀주에 밀렸다.

양주군수 부임 첫날 오는 곳이 여기다.

경찰서장도 수시로 와서 취해 가는 곳이다.

이 술을 먹으러 내무부 장관 일당이 온다고 부역을 푼 적도 있다.

우마차길 수북한 풀을 깎는 데 이틀이 걸렸다.


아버지 친구들이 이빨로 병뚜껑을 땄다.

30도짜리 진로 소주를 먹고 입을 훔쳤다.

대부분 외상이다.

나중에 안 먹었다고 우기기 일쑤였는데 “장부가 거짓말하느냐”라고 들이대면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엄마가 유식자다.

엄마는 장흥면 삼상리에서 송추국민학교를 걸어서 다녔다.

그 시대에 일곱 살, 같은 반 애들이 업어서 갈 때도 많았다고 했다.


엄마는 성경을 필사하다 죽었다.

천자문은 수없이 썼고 신약 다 쓰고 구약 반쯤 쓰다 실필했다.

신약도 구약도 약발이 끝났다.


40일 치 밥값 떼먹고 간 변상근도 나중에 예수 믿었으면 천국 보냈을까.

보막이 왔던 그들에게 떼인 돈이 많다.

준석이네 집 앞이다.

그때 시멘트를 처음 봤다. 서양에서 온 회(灰)라는 뜻으로 양회라고 했다.


이준석은 항렬이 높다.

시골에선 일가가 아닌 남이라도 항렬을 정했다.

그렇다 보니 남남끼리도 나보다 어린 아저씨들이 생겼다.

그들은 버릇이 없고 권위만 있다.

이준석이 그랬다. 김상전이 그랬다.

아무한테나 반말이고 명령이다.


김상전은 이장을 보면서 부자가 된 자다.

별장 짓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먹었고

사고파는 사람들에게 복비를 챙겼고

소유권 미등기 토지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4촌 김상천은 예외였다.

나보다 나이 많았지만 조카님이라 불렀는데 상전이 얘는 나보다 어리면서도 "야"라고 불렀다.


김상천의 아버지 김학수는 유학자다.

천자문을 떼었고 사자소학을 떼었고 명심보감에 논어 중용까지 떼었다.

그의 아들 중엔 개차반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가뭄에 난 콩처럼 드문드문했다.

대부분의 애들이 항렬병에 걸려 있었다.


항렬병 옆에 장남병이 있었는데

증상은 비슷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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