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안의 생각장난 -16-

망치는 사람들

by 생각소년 김영안

포승에 묶여간 이용기를 김갑수가 빼왔다.

미군이 흘린 무전기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가뒀는데

김갑수는 당시 법조계의 거물이었고

이용기는 그의 별장지기였다.


60년대, 70년대는 별장이 유행했다.

많은 원주민들이 평당 이백 원에 땅을 팔아 나갔고

남은 자들은 품을 팔았다.


한 계절 내 품을 사 준 곳은 노 사장 별장이다.

세 번째 처를 박기 위한 집이라고 했는데

집도 예뻤고 처도 예뻤다.


동네 끝 충자네 집을 사서 헐고 새집을 짓는 중이었는데 뒷담 울타리와 감나무는 살렸다.

알돌담은 수백 년 묵은 듯 까맸고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감나무는 북이 막힌 남향터라야 얼어 죽지 않는다.

충자네 집터가 그렇다.


새집은 빨간 벽돌에 빨간 기와를 올렸다.

세 번째 처와 시작한 사랑을 그대로 발라놓은 듯했다.

나는 이런 노 사장을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뒷담과 감나무는 조강지처 위하듯 살렸고

집은 차처들, 갈아치우듯 갈았으니 그렇다.


황 사장 별장이 컸다.

캐나다에서 수입한 엘크 여러 마리를 철망 속에 가두고 박성순이 칡을 거둬 먹였다.

개울이 범람하면 그는 삼태기를 들고나갔다.

피리나무 밑에 대고 몰면 물고기 한 사발씩 잡혔는데 그 시뻘건 물에 이삼수가 떠내려가 죽고 나서부터 멈췄다.

하필이면 스물세 살에 죽어 이름 때문이라고 뒤숭숭했다.


망속에 갇힌 건 사슴만이 아니다.

몰면 잡히는 것도 물고기만이 아니다.

세상이 온통 망이다.

법망이라고 했다.


법엔 걸리는데 죄는 아닌 게 있다.

죄인데 법엔 안 걸리는 게 있다.


그린벨트 사람들이 비닐하우스 안에 사는 건 도시계획법 위반이나 죄는 아니다.

포장마차에서 어묵 팔다 걸린 미자 엄마도 식품위생법에 걸렸으나 그를 죄인 취급한 이는 없었다.

김충길의 산림법 위반도 그렇다.

법은, 그가 물푸레나무를 잘라 도낏자루로 썼다고

여섯 달이나 실형을 살렸다.


망치는 사람들은 망을 촘촘히 칠수록 좋다.

어차피 망태질할 자는 지들이니까 그렇다.

나 어렸을 때 울음을 멈추게 했던 망태 할아버지는 낭만신사였다.


땅 팔고 집 팔아 나간 김덕환은 2년 만에 맨몸이 됐는데 우여곡절 끝에 뻥튀기 기계를 사 불광동에 펼쳤다.

뻥 뻥,

옥수수 갖고 나온 사람에게 옥수수 강냉이 튀겨 줬고

쌀 갖고 나온 이에게 쌀강냉이 빼 줬는데

단속반에 쫓기고 쫓겨 겨울바람에 길을 내주고 하늘을 봤다.


군고구마 장사도 그랬다.

군고구마 장사는 군고구마 팔고

국화빵 장사는 국화빵 팔았다.

내 영역 지키듯 네 영역 빼앗지 않았는데

국가는 그들의 영역을 빼앗았다.

그 많던 포장마차는 다 어디로 갔는가.


이제 군고구마를 사 먹으려면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로 가야 한다.

하노이의 야시장으로 가야 한다.


노점상이 있었던 그때는 희망 사회였다.

꿈꿔도 좋은, 꿈이 있는 세상이었다.

품 판 돈, 종잣돈으로 노점을 깔고

그렇게 번 돈으로 점포를 내고

도매상이 되고

건물주가 되는

사다리의 첫 다리였다.


노점상 없는 사회에서 사장이 되는 길은 없다.

그런 세상에서 사장을 꿈꾸느니

사장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기를 꿈꾸는 것이 낫다.


대포항은 속초시의 명소였다.

구부러진 길 양쪽으로 함지박 가득 활어들이 팔딱였고

앞치마에 장화를 신은 아낙이 그것들을 썰었다.

만 원, 만 원,

매일

항에서 불어오는 비릿 바람과 사람 냄새가 만나 엉켰다.

이제 대포항은 내 기억 속에만 있다.

남루하다고

불법이라고

비위생적이라고


현대화하라고

대출해 주겠다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의 횟집 타운은 아무도 가지 않는다.


소래포구도 그렇다.

내가 다니던 해남집은 나를 잃었고

나는 포장마차 같은 그 집에서 먹는 재미를 털렸다.


옷장사 생곤이 엄마는 어떤 망에 걸렸을까?

그는 겨울이면 동태를 이고, 여름이면 옷을 이고 다녔는데

콩도 받았고 깨도 받았다.

그것도 없으면 엄마 머리숱을 잘라 갔는데

사발만 했던 쪽이 조막만 해지면 울었다.


엄마도 울고

딸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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