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심판
차처(次妻)와 들어와 사는 유현국이 이장을 넘봤지만 시켜주지 않았다.
황만세도 그랬다.
차처와 후처는 다르다.
후처는 전처와 결별한 현처이고
차처는 본처가 있으면서 두 번째 처다.
일정한 살림을 차렸으면 차처,
가끔 뻐꾹거려 보리밭 드나드는 사이는 년놈이다.
국립 국어원이 아닌 이 동네 국어원의 해석이다.
유현국은 '자칭시인'이다.
등단한 바 없으나 자비 출판을 두 번이나 했고
미발표 처녀작을 한 보따리 갖고 있는 자다.
파주교육청에서 동갑내기 사원 서숙자와 놀다가 쫓겨온 황만세와 싸우기 일쑤였는데
내용은, 누가 세상을 더 많이 아느냐의 결투였다.
황만세는 맹자를 좋아했다.
맹자를 좋아한 정도전도 좋아했다.
정도전이 아니었으면 조선은 없었으며
우리나라의 운명은 고려 말에서 끝났다고 장황했다.
듣는 사람은 별 반응 없었다.
유현국은 맹자를 싫어했다.
수천 년 지배와 피지배 속에서
지배자의 편에 있었다고 성토했다.
그는 장자를 좋아했다.
공맹을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요유’를 꺼내는 자신이 조금은 더 멋있다고 믿었다.
세상을 초월한 척했지만 동네 이장 선거엔 관심이 많았다.
술버릇 나쁘기론 유현국이다.
그는 소주 다섯 잔을 연거푸 마시고 손등으로 입을 훔치고는 바로 취객이 됐다.
특히 옆에 있는 여자에게 손이 갔는데, 노벨문학상 후보로 충분했다.
이름만 대면 온 국민이 아는 인사들과 술 먹은 적이 있다.
아현동인가였는데 일식형 룸살롱 같았다.
테이블 위 알몸에 얹힌 회를 먹었는데
거기 놓인 것을 서로 드시려고 싸웠다.
그중 한 명은 대하소설을 제 무릎만큼 쓴 자다.
나라 잃은 민족의 비운을 다뤘고
노동자들의 아픔을 대신 울었고
여성들의 눈물겨움을 눈물겹도록 쓴 자다.
나도 그가 풀어놓은 슬픔에 책을 적신 적이 숱하다.
그날도 그의 글은 메이저 신문에 연재됐고
또 한 명은 금방 종로 와이엠 어쩌고에서 민중사관 관련 강연을 하고 온 자다.
필화 사건 「겨울 공화국」으로 유명해진 양성우가 서울 한복판에서 비엔나라는 여자 술집을 할 때였다.
거기서 술 먹으며 애들 다리를 만진 것만으로도 수없이 자학하고 아플 때였는데
이것들에 비하니 차라리 나는 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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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입동 무렵이면 김장을 했다.
저녁이면 엄마들 여럿이 모여 무채를 썰었는데
양동이 가득 이야기들을 쌓고서야 집으로 갔다.
이튿날
몸빼바지 입은 아줌마가 엎드려 버물였다.
여러 아낙들이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잘 빨린 배추 포기에 발랐다.
차처들은 안 왔다.
약속이나 한 듯 추운 날이 있다.
입시 날이다, 동짓날이다, 김장하는 날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추웠다.
조선배추꼬랑이국으로 속을 데웠는데
된장맛이 좋았다.
콩으로 만든 메주를 소금물에 발효시킨 것이
된장이다.
된장을 발효시킨 소금물은 간장이 된다.
된장 시장도 기업화됐다.
아니, 정치화로 진화 중이다.
제일제당의 해찬들이 시장의 반을 점유하나
이름이 싫다고 안 먹는 이들이 늘어 청정원이 웃고 있다.
우리나라 같은 양당 체제에선 한쪽이 마이너스되면 한쪽이 플러스된다.
정책 개발할 필요 없고 정치 잘할 필요 없다.
상대를 만신창이 만들면 될 것을
언제 좋은 정책 만들어 국민을 설득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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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놀이 하던 날 줄다리기
엄마가 심판 봤다.
호루라기 불기 전에 당긴 아랫동네에
반칙패 줬다.
그날 저녁,
설날 음식으로 두부를 만드시는데
막 엉긴 순두부, 베보자기에 퍼 담으려 할 때
칠 남매 드리덤벼 다 먹어버렸다.
엄만
누구 편이었을까
애들 편이었을까
두부 편이었을까
혹은 눈물 편이었을까.
삼발이 아래로 뚝뚝 떨어지던
콩물 같은 눈물
엄마의
그런 심판이
그리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