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안의 생각장난 -15-

방울팬티의 비애

by 생각소년 김영안

대동다리는 갈월 애들과 돌고개 애들이 학교 갈 때 만나고 집에 갈 때 헤어지는 곳이다. 그쯤에 초소를 만든 건 과학이다. 파견 나온 김 순경은 보초를 나갔고 나는 그의 딸 미숙이와 놀았다.


김미숙은 그림을 잘 그렸다.

이중섭은 소를 많이 그렸고

고흐는 해바라기를 잘 그렸지만

김미숙은 우산을 잘 그렸다.


여덟 살 때

'꽁꽁 꽁서방'을 노래하며 손가락으로 그렸지만 흙에 그린 그의 우산은 장욱진이 그린 지붕보다 높았고 유영국의 산보다 유연했다.

그는 늘 치마를 입었는데 다리는 하얬고 빤스는 노랬다.


오줌 누는 곳에서 똥 누는 곳까지

터진 바지 입고 산 때가 있었다.

헛(虛)바지다.


지금은 삼각팬티도 있고

사각팬티도 있고

요일팬티도 있지만

최고의 정력팬티는 노팬티다.


삼각팬티 출생한 지 백 년이다.

일본이 전쟁으로 광(狂) 낼 때 물자가 모자라자 옷감 절약형으로 만든 게 삼각팬티다.


팬티는 싼 것일수록 좋다.

내가 벗긴 팬티도 쌌다.


팬티 중 몹쓸 팬티는 압구정 팬티였다.

볼기에 딱 붙은 나일론 팬티였는데

압력과 밀도가 높아

손가락도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꿈꿨다.

함백산 비탈밭의 면팬티

헐렁함의 만만함이 그리웠다.


예산 팬티가 좋았다.

발가락으로 벗길 때는 더 좋았다.


걔가 벗긴 팬티도 슬펐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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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팬티의 비애


방울팬티를 선물 받았다.

자줏빛 실크에

흰빛 꽃잎이 횡으로 배열된

삼각팬티였는데


노랑 빨강 파랑 까망 하양의 루비방울과

천을 꿰매 만든 하트가 매달려 있었다.


맨날,

내 사타구니에선


형형색색 다섯 개 방울과

그것을 새끼인 양 거느린 하트가

기어 다니며

주절거리며

놀곤 했는데


얘들을 가끔씩 꺼내 바깥세상 보여주고

얘들이 감췄던 것을 꺼내 안 세상 보여줬던 그녀가

가버린 거였다.


아뿔싸

오늘도 굴러온 방울 다섯 개

박힌 방울 두 개를 건드리고


손가락 다섯 개

거기 가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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