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랭 사인
밤에 비가 왔는지 추녀 끝 거미줄에 이슬이 걸렸다.
저렇게 맑은 것들에게선 먹을 게 없다는 걸 아는 듯 거미는 나오지 않았다.
이슬도 거미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집으로 갔다.
그날도 해는 동쪽에서 떴다.
꽃잎이 열매에게 자리를 내어주듯
이곳의 한 촌로도
손주들 살아갈 자리를 위해 행성을 비웠다.
먼 곳에서 소리가 왔다.
잠결에 듣는 올드 랭 사인인가,
"오호 오헤~ 오호 오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며 커지며 나에게 왔다.
정호 할머니, 태운 상여였다.
노제를 폈다.
정호 아버지가 잔을 왼쪽으로 세 번 돌려 상에 놓고 절했다.
뒤에 여럿이 따라 했다.
정호는 멍석 밖에서 신발도 못 벗고 엎드렸다.
건을 쓴 상주들이 십 원짜리 황색 지전을 새끼줄에 끼웠다.
윤모가 사위를 붙잡아와 새끼줄로 밀었다. 그도 지전을 걸었다.
딸 정옥이는 제 발로 걸어 나와 돈을 놓았다. 빨간 눈을 훔치며 돌아섰다.
맏며느리 정호 엄마는
어깨는 들썩거렸는데 눈은 뽀송뽀송했다.
'딸알랑 딸알랑'
선소리꾼 이준수는
선소리보다 먼저 요령으로 사람을 잡았다.
처음에는 살살 낮게 흔들어
슬프지 않은 것들을 슬프게 하고
슬픈 것들을 울게 했다.
어느 한순간 폭포처럼 톤을 쏟으면
상여는 흥 반 슬픔 반 흔들렸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오 호 오 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 호 오 헤~"
이준수는 선소리를 잘 먹여 일영리 삼상리까지 다녔다.
"옛날 옛법 버리지 말고"
"오 호 오 헤~"
"새날 새법 만들지 말고"
"오 호 오 헤~"
소리꾼도 아니고 이야기꾼도 아닌 그가
소리꾼을 뺨쳤고 말꾼을 능멸했다.
악보도 알지 못하는 그가 저걸 어떻게 익혔을까?
성백달이 관 놓는 방향을 보았고
김덕훈이 시신 누울 자리를 다듬었다.
"오호라 달고 오호라 달알공"
상여소리와 달리 회다지소리는 신이 났다.
선소리꾼 이준수가 "군방님네~"라고 부르니
달고꾼들이 "에~헤~라아 달고"로 답했다.
"좋다 좋구나 서산 낙조 떨어지는 해는 내일 다시 돋건마는"
"에 헤 에헤에헤 에 헤야 에헤에헤"
"황천길이 얼마나 멀어 한번 가면 에루화 영절인가"
"에 헤 에헤에헤 에 헤야 에헤에헤"
발로 한 번 밟고
달고지대로 한 번 찧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고
바가지술도 따라 돌고
상여 메고 갈 때는
요령을 흔들며 먹였고
회방아 다질 때는
북을 치며 먹였다.
"오~헤라 달고 오~헤라 달공"
상여 때 선소리는
죽은 자의 입장에서 먹여지고
회방아 다질 때 선소리는
산 자의 입장에서 먹여지기 때문일까?
정호 할머니 묻는 그날은
슬픈 신남, 신나는 슬픔의 하루였다.
마루에 상청을 꾸미기 위해 시계를 떼었다.
주먹만 한 추를 좌우로 흔들던 시계는 검고 컸는데
밥은 정호 아버지가 줬다.
태엽을 감으면 조금 빨리 갔고
태엽이 느슨해지면 조금 늦게 갔지만
동네 사람들은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고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잠잤다.
당숙 김덕준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
아버지는 양동이 엎어 놓고 치는 손장단에 능했다.
미옥이 엄마는 창부타령을 잘 불렀다.
문칠동은 만담을 잘했다.
영길이 아버지는 지게를 잘 만들었다.
효종이 할아버지는 지붕을 잘 이었다.
태순이 아버지는 코뚜레를 잘 끼웠다.
김백영은 명심보감을 잘 가르쳤다.
동네는 시계 속이었고
사람들은 톱니였다.
나도 시계 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동그라미 안으로 쏙 들어가
너는 시침
나는 분침
맷돌로 콩 갈듯
시간을 갈았으면 좋겠다.
두부모처럼 반듯하게 잘라
나눠줬으면 좋겠다.
잠자는 사람에게 날 밝았다고 땡땡땡
일하는 사람에게 밥 먹으라고 땡땡땡
휴식 시간도 없이 뱅뱅 돌지만
얼마나 좋으냐
맘에 꼭 드는 사람 손목에서
매 시간 한 번씩
입술도 대고 배꼽도 대고.
정호 할머니의 시간은 오늘부터 없다.
그가 시간 속에서 없어진 것인지
시간이 그에게서 없어진 것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다만, 시간이 없는 그에게
시계가 있을 이유는 없을 터다.
시계를 떼어낸 벽 앞에
흰 천을 둘렀다.
첫 저녁상식
유—세—차
상—향—
석별의 애잔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