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안의 생각장난 -22-

꾀꼬리봉에서 용바위까지

by 생각소년 김영안


언덕길 중턱에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복숭아나무에는 송아지가 매여 있었다.


송아지는 면소가 있었고 개소가 있었다.

면소는 면에서 송아지를 사주면

나중에 이익을 면과 나누는 것이고

개소는 개인과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밭과 밭 사이에 공터가 있었다.

양쪽 밭에서 나온 돌들을 버린 자리였는데


먼저 온 돌들은 촘촘했고

나중 온 돌들은 엉성했다.


비를 먹고 바람을 먹으면서

나중에 온 것들도 탄탄해질 것이다


그 자리는 동네 애들의 놀이터다.

겨울이면 불장난하고 놀기 좋은 곳이다.

오르막 경사를 따라 아궁이를 만들고 불을 땠는데

연기는 구들장을 데우고 굴뚝으로 나갔다.


서울 사는 봉재숙이 겨울방학 때 놀러 와서

같이 불 붙였는데

열두 살이던 내 눈에 그 애가 예뻤으니

하마터면 불장난하다가 불장난할 뻔했다.


밭 너머 웅덩이는 멱 감는 곳이다.

산토끼도 멧돼지도 다니는 길만 다니듯

사람들도 다니던 길만 다닌다.


식당도 한 번 앉은 곳, 꼭 그 자리에 앉는다.

주차도 한 번 댔던 곳, 꼭 그 자리에 댄다.

애들도 한번 멱 감은 곳, 꼭 그 자리에서 멱 감았다.


-


꾀꼬리봉에서 샘으로 나온 물은

산등과 산등 사이를 지나면서 돌창이 된다.


돌창물은 돌창물을 만나 개울이 되고

개울물은 개울물을 만나 천이 된다.


우리가 멱감던 곳은 개울이다.

밭너머, 웅덩이, 용바위,


우리들끼리 일 때는 가까운 곳, 웅덩이에서 감았고

형들과 함께일 때는 용바위까지 갔다.


용바위에는 이무기가 있다고 했다.

어느 날 용바위에서 사라진 소의 코뚜레가 큰 산 너머 용못골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무서웠다.


개울 양쪽 가에 피리나무가 있었다.

피리나무 강아지에 물잠자리가 앉았다.


개울 이쪽과 저쪽은 돌다리로 건넜다.


나는 책보를 들고 건넜다.

엄마는 빨랫감을 이고 건넜다.

아버지는 나뭇짐을 지고 건넜다.

할머니는 상여를 타고 건넜다.


돌멩이 들추고 메기를 잡았다.

개구리 짓쪄 넣어 가제를 잡았다.


쏘가리는 쏘일까 봐 안 잡았다.

버들치는 빨라서 잡지 못했다.

기름쟁이는 미끄러져서 놓쳐버렸다.


지개울에선 장대훈이 이끌었다.

돌고개에선 김충길이 대장이었다.

작은나골 애들은 김영욱을 따라다녔다.

나무 백 그루가 있으면 백 개의 서열이 있고

초원의 그 많은 누떼에도 낱낱이 서열이 있다.

우리 동네도 그랬다.

아버지들이 그랬고 아들딸들이 또 그랬다.


물속 세상도

물 밖 세상처럼

작은놈부터 큰 놈까지

못생긴 놈부터 잘생긴 놈까지

서열이 있었다.

천도 또 한 천을 만나서 강이 되었을 터인데

천, 갓에서는 무엇을 잡았을까.


봉재숙과의 불장난이 성공했으면

우린 지금 어떤 물에서 무엇을 잡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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