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1-
막막한 이 세상에 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쭉 뻗은 길은 쭉 뻗어서 좋고
구부러진 길은 구부러져서 좋다.
우리 동네 그런 길이 있다. 말부리고개다.
내려다보이는 기산리와 소사고개,
감악산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말부리고개는 높고 험해서
타고 넘던 말이 굴렀다는 곳이다.
소사고개는 기산리 사람들이 가래비로
장 보러 다니던 길이다.
나는 여기에
'길'이라는 카페를 짓고 싶다.
위험했던 길과
고단했던 길,
가까운 길과
먼 길이
한눈에 드는 곳.
매일 길 찾는 사람들이 와서
길을 묻는 곳.
그 문을 열고 닫으며
내 생에 당도하지 못할,
멀고 끝없음의 상념에 잠기고 싶다.
남쪽으로 난 북한산까지의 길도 좋다.
앵무봉으로 가는 산길도 좋다.
챌봉을 베고 도는 임도도 좋다.
나에겐 그런 친구도 있다.
길영신이다.
그와 나눈 이야기가 길만큼 길었는데
그와 나눌 이야기도 길만큼 남았으니
좋다.
아직 남아있는
길에 대한 메타분석,
그는 하루라도 사고하지 않으면
뇌에 사고(事故)가 나는
사고(思考)뭉치다.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를 길들였고
길 들기를 기다렸던 그도 나를 길들였다.
나는 그의 이름자를
늘 새것을 탐구한다는 뜻으로
영신(迎新)이라 써 줬고
그는 내 이름자를
영혼으로 본다는 뜻을 써
영안(靈眼)이라 지어줬다.
불행히도 나는 그런 친구 하나를 잃기도 했다.
故 이석기다.
그는 길을 그리는 화가였다.
주로 고갯길을 그렸으니
그 고개 너머의 세상은 늘 내 몫이었다.
내가 넘은 고개도 쉽지 않은 길이었고
내가 도착한 그 너머도 녹록지 않은 세상이었지만
내 앞에 또 고개 너머를 놓아줘
나를 불러준 것도 그 친구였다.
2006년 8월 6일,
함께 만리포 해수욕장을 가기로 한 날이었는데
약속한 시간, 딱 한 시간 전에
故 이석기란 부고가 먼저 왔다.
그는 만리보다 먼 길로 떠났지만
나는 여태까지
그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다.
그 친구도 미군차가 지나가면
나와 같이 따라갔다.
뽀얀 먼지 속을 쫓아가며 "기브미 기브미" 했는데
어떤 놈은 "노까땜 노까땜" 했고
또 어떤 놈은 초콜릿을 던졌다.
아무것도 안 던져 주면
팔등을 밀어 욕을 해줬다.
기동훈련 왔다 간 자리는 우유갑이며 봉지커피며 온갖 귀중품이 널렸었다.
"헤이 헤이"라 불렀고 "예스"나 "노"로 대답했고
원 투 쓰리 포를 배웠으니
우리는 이미 중학교 가기 전에 영어를 알았다.
나는 그 흙길, 양철집에서 살았다.
비 오는 날이면 양철집이 그립다.
굵은 빗방울 쏟아질 때면
옛날에 살던 양철집이 그립다.
쨍그랑 소리와 땡그랑 소리에
낮잠 깼을 때
나는 전쟁이 난 건지 어리둥절했었다.
창호지문 흔들리는 소리와
고추밭 뒤집히는 소리와
귀신 우는 소리를
분별할 수 없었다.
집 앞 황톳길에
순식간 미꾸라지가 팔딱였고
후다닥 행인들 추녀에 들었다.
비 오는 날이면 양철집이 그립다.
낮잠에서 깬 오후가 아침인 줄 알고
마른 눈곱 파며 책보를 쌌던
내 유년의 집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