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안의 생각장난 -24-

씨 없는 포도알

by 생각소년 김영안

내시 황금만은 그것 없어 서러운데 다리도 하나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고환을 묶어 내시를 만들었는데

불쌍하고 미안한 나머지 잘 살기라도 하라는 뜻에서 황금만이라 이름 지었으나

살다가 그만 다리 하나를 잃은 것이다.


해방이 되고 이승만이 민주공화국을 세우자

왕정을 꿈꿨던 내시들이 쇠락했고

황금만도 금속 탐지기를 들고 다니며 파편을 캐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젖봉에서였다.


전투가 치열했던지 젖봉엔 탄피도 많았고 파편도 많았다.

젖봉의 본명은 형제봉이다. 볼록한 두 봉이 그것과 흡사해 나중에 김영욱이 지은 이름이다.


내시가 무슨 젖봉을 탐했냐고 비아냥댔지만

사실 내시도 여자를 밝힌다. 세포에 내재된 선천적 남성성에서 일까


삼상리 살던 내시 김성룡이 커피 장사 미쓰리에게 빠졌던 순애보도 한 꼭지 소설감으로 충분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에도

출마했는데

합동 연설회 연단에서

침묵으로 사람들을 울린 적도 있었다.


내시로서의 한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배꼽 아래만 내려다보면서


한참을


그냥 서 있었다.


울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그의 앞에


사람들도 그냥


울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나의 은사 최무석도 내시다.

전교생 600명이던 삼상국민학교 교장이었는데

그가 오줌 누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유월이면 젖봉은 바쁘다.

남하하고 북상하는 장마전선이

여기서 싸우기 때문이다.


오전에 운해가 올라가 가슴을 만지면

어느 순간 햇살이 내려와 침을 발랐다.


하루 여러 번

고기압도 받고

저기압도 받는다고

영욱은 또 빈정거렸지만

사실 젖봉은

제 꼭지 혼자 물어줄 햇살이 그리웠다.


젖봉엔 가끔 해골도 보였다.

인민군이 죽인 해골이나

국방군이 죽인 해골이나


색이 하얘서


누가 빨간 놈이었고

누가 파란 놈이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외발이 된 황금만은

일영리 농업협동조합에서 매대를 봤다.

그땐 면 단위 농협이 아니라 리 단위였는데

리사무소를 겸했다.


황금만이 올리고 내리는 주판알은

느릿느릿했다.

손을 다 펴야 잡히는 나무 주판이었는데

알이 굵었다.


석현리 애들이 하굣길에 쌀을 한 움큼씩 훔쳐 먹었지만

그는 모르는 척해줬다.

대담한 정훈이는 오징어포도 뺐다.


옆엔 이발소가 있었는데

있는 집 애들은 상고머리 깎았고

없는 집 애들은 빢빢머리 깎았다.


나는

삐뚤어진 대갈통 탓에

육쪽마늘이란 별명을 얻었다.


영세한 리 단위 농협이 면 단위로 통합됐다.

서로 별개였던 농협과 농업은행이 통합되면서

우리나라 읍면의 독점 금융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황금만은 양손으로 목발을 잡고 걸어서 퇴근했는데

낮이 긴 유월에도 어두워야 집으로 갔다.


동뚝길,

산 있는 쪽으로는 봇도랑이 있었고

논 있는 쪽으로는 경사지였는데

그는 그믐밤에도 옆으로 구르거나 빠지지 않고

그 길을 다녔다.


소쩍새,

그놈만 꼭 그 시간,

황금만이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가 울었다.


-


양주시 장흥면은 내시촌이다.


도성에서 우마차로 한나절 길

임금님 진상품으로 밤이 유명한

밤나무골이다.


언젠가 훗날 왕정으로 복귀했을 때

내시 품귀 현상을 우려해

내시를

생산 관리해 온 지역이다.


내시집은 부자다.

왕정 때부터 대물려온 지주다.


딸을 내시집에 시집보낸 친정아버지가 왔다.

부잣집답게 진수성찬이 나왔다.


그러나 밥그릇 뚜껑 열었을 때

빈 그릇,

정작 밥이 없었다.


친정아버지 대오각성했지만

딸의 빈 그릇

채워줄 길은 없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내시집,


이 지역으로 시집보낼 때면

신랑감 바지 내려 보는 절차가 있었다.


나도 내 여자 처음 만날 때

열흘 면도하지 않았다.


손가락 한 마디,

내시의 그것과 별반 차이 없어

바지 내리지는 못했지만


한 세상

꼿꼿하게 사는 데는

문제없었다.


태어나 바로 명주실에 꼭 묶여

똑 떨어진 고환


왕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서도 안 되는 민주공화국에서


내시댁만 평생

씨 없는 포도알 물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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